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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음악 및 뮤지션 기사

(인터뷰) 최희선 “나는 아직도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많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3. 1.

내가 웹진 '이명' 필진으로 합류한 뒤 처음으로 진행한 뮤지션 인터뷰이다.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준 희선이 형님께 감사를 표하며...
이제 어디가서 음악 필자라고 말은 하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기사 링크는 http://diffsound.com/%EC%B5%9C%ED%9D%AC%EC%84%A0-%EB%82%98%EB%8A%94-%EC%95%84%EC%A7%81%EB%8F%84-%EB%93%A4%EB%A0%A4%EC%A3%BC%EA%B3%A0-%EC%8B%B6%EC%9D%80-%EC%9D%8C%EC%95%85%EC%9D%B4-%EB%A7%8E%EB%8B%A4/




최희선 “나는 아직도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많다”

대한민국에서 연주자는 경력과 역량에 관계없이 가수의 반주자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인기 가수들조차도 정규앨범을 내는데 부담을 느낄 정도로 위축된 음반시장에서, 연주자가 자신의 앨범을 발매하는 일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이처럼 열악한 음악 풍토에서 최희선은 40년 가까이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스튜디오 세션과 라이브 연주자 두 영역에서 모두 정상의 자리를 지켜 온 드문 기타리스트이다. 그의 연주는 기름진 톤을 들려주면서도 정확하고 깔끔해, 후배 연주자들은 늘 그가 어떻게 연주하고 어떤 장비로 톤을 연출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연주자의 세계에서 황혼의 나이인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후배 연주자들을 긴장시키는 거장이다. 하지만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더’라는 수식어가 없으면, 최희선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낯선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최희선은 지난달 28일 정규 2집 [매니악(Maniac)]을 발표했다. 앨범 타이틀에서도 드러나는 그의 음악적 고집은, 단 한명의 게스트도 참여시키지 않고 보컬을 담은 곡 하나 없이 오로지 연주곡만을 실은 앨범에서도 강하게 엿보였다. 최근 필자는 최희선을 서울 송파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지난 2013년에 발표된 첫 솔로 앨범 ‘어너더 드리밍(Another Dreaming)’은 블루스부터 헤비메탈까지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지만, 어수선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들은 꽤나 고집스럽게 느껴진다. 어떤 자세로 이번 앨범 제작에 임했나.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내가 연주하는 음악은 국악부터 메탈까지 폭이 대단히 넓다. 지난 2013년에 발표한 첫 솔로 앨범 [어너더 드리밍(Another Dreaming)]은 그 영향을 받아 대중과의 접점을 생각한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는 “나는 기타리스트이다”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연주만을 담아냈다. 앨범 타이틀 [매니악]은 그런 내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첫 앨범은 록을 기본으로 하되 처음 내 연주를 접하는 대중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팝적인 곡들도 일부 담았지만, 이번 앨범에는 그야말로 마니아들이 좋아할만한 음악만을 담았다.

연주가 전작에 비해 매우 간결해졌다. 이번 앨범은 확실히 전작과 비교해 라이브에 가까운 느낌을 들려주는 곡들이 많다.

나에게 많은 음악적 영향을 준 60~70년대 록밴드들은 대부분 3인조 편성이었다. 이번 앨범은 그 영향을 받아 기타, 베이스, 드럼 3인조만으로 녹음했다. 즉 기타 연주를 오버더빙하지 않고 순수하게 3인조 밴드 사운드만을 앨범에 담은 것이 이번 앨범의 특징이다. 앨범에 실린 사운드를 라이브에서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작업했다.

기타리스트가 보컬곡 없이 오로지 연주곡만을 담은 앨범을 발표하는 일은 매우 어렵지 않나? 충분히 화려한 게스트 보컬리스트를 기용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자신의 연주만을 담았나?

솔직히 이번 앨범이 내 마지막 앨범이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작업이 힘들었다. 연주자의 앨범을 주목하는 세상도 아니지 않나? 다채로운 게스트 뮤지션과 보컬리스트들을 참여시켜 첫 앨범보다 수월하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앨범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길이 아니다. 후배 연주자들에게 연주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과 연주만을 담은 앨범을 만들어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2664251_org강렬하면서도 간결한 리프와 화려한 솔로 연주로 앨범의 문을 여는 ‘댄싱 핑거스’, 리듬의 다채로운 변화와 정교한 솔로 연주가 돋보이는 ‘나비’, 직선 도로 위를 달리는 ‘할리 데이비슨’처럼 시종일관 무게감 있는 리프로 질주하는 ‘하이웨이 스프린트’, 변화무쌍한 리듬과 멜로디 사이의 경계선을 날렵한 연주로 여유롭게 넘나드는 ‘매니악’ 등 전반적으로 수록곡들이 전작에 비해 군더더기가 없고 선명한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매니악’에서 들려주는 연주는 카피조차 어려울 만큼 광기가 엿보여서 놀랍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연주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연주를 잘했던 시절은 30대 때였는데, 음악을 가장 잘하는 시절은 요즘인 것같다. 이제는 어떤 음악에 어떤 연주를 해야 하는지 아는데, 손이 그만큼 움직이지 않는다. 연주력과 음악적 역량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것이 느껴져 안타깝다. 사실 나는 아직도 연주하고 싶은 음악도 들려주고 싶은 음악도 많다. 그런 음악적 욕심을 이번 앨범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 중 하나는 조용필 12집 [세일링 사운드(Sailing Sound)]의 동명 수록곡을 볼륨 주법의 몽환적인 연주로 재해석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이다. 어떻게 이번 앨범에 이 곡을 수록하게 됐으며, 또 ‘가왕’께서 허락을 쉽게 해주셨는지 궁금하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미리 작업을 다 해두고 사후에 형님(조용필)에게 허락을 받았다. 형님이 웃으시면서 바로 허락해주셨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 카를로스 산타나가 기타 명곡들을 재해석한 앨범을 발표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바 있지 않나? 아직은 막연한 계획에 불과한데, 지난 100년간의 한국 대중음악사 대표곡들을 내 나름대로 재해석해 앨범을 발표해보고 싶다.

프로 연주자로서는 드물게 국산 브랜드인 길모어(Gilmour)의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눈에 띈다. 특별히 국산 악기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는가?

연주자에게 중요한 기타는 연주자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주는 기타이다. 내가 사용하는 기타는 픽업의 코일 하나하나까지 철저하게 내 연주 색깔에 맞춘 모델이다. 튜닝이 정확하고 특히 공연장에서 빛을 발하는 악기이다. 국산 기타 외에도 깁슨(Gibson) 등 세계적인 악기 브랜드도 사용한다. 내가 일부러 국산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국산 기타가 내 음악적 색깔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악기 제작기술은 세계수준이다.

연주자로 살아가긴 어렵지만, 여전히 실용음악과에 진학해 프로 뮤지션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가?

젊은 연주자들에게 실용음악과가 남긴 그늘이 크다. 비유가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직접 물고기를 잡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상당수가 물고기가 많은 저수지에만 익숙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무작정 지식을 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지식은 언제 어떻게 쓸 줄 아느냐가 중요하다. 스스로 듣고 연구하며 자생력을 키우는 과정이 부족한 것 같다. 기타를 자꾸 손으로만 치려고 한다. 손은 수단일 뿐이다. 연주는 손이 아니라 가슴이 하는 것이다.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희선사진1어떤 기타리스트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평소에도 20~30대 젊은이들과 어울려 뛸 정도로 축구를 사랑한다. 축구와 비교하자면 관객들이 볼 때에 화려한 선수와 감독이 봤을 때 경기에 필요한 선수는 따로 있다. 음악계에는 나보다 훨씬 기교가 뛰어난 ‘댄싱 핑거’들이 많다. 문제는 그것에 그치면 안 된다. 음악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기타를 잘 연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골방 기타’는 연주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밴드로 함께 하기엔 어렵다. 음악을 잘해야 한다. 기타 연주력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정도면 족하다. 중요한 것은 함께 연주하는 동료와의 조화이다.

지난 1월 홍대 클럽에서 ‘뮤지션스 데이’라는 타이틀로 콘서트를 열어 실용음악과 학생들과 직장인 밴드를 정상급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 세우지 않았나? 세대를 초월한 무대가 참 인상적인 콘서트였다. 앞으로도 그런 콘서트를 자주 선보일 계획인가?

당초 지난해 12월에 열었어야 할 공연이나 늦어져서 1월에 개최됐다. 앞으로 ‘뮤지션스 데이’라는 타이틀로 1년에 두 번 콘서트를 마련할 생각이다. 우선 올해에는 6월과 12월에 콘서트를 열 생각이다.

지난 1977년에 데뷔해 밴드와 세션 연주자,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3년부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합류해 지금까지 리더로 밴드를 이끌고 있다. 이제 곧 프로데뷔 40주년을 맞는다.  이토록 오래 정상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끊임없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콘서트를 마친 후에도 나는 내가 연주한 모습을 담은 영상을 반드시 모니터한다. 그리고 아무리 피곤해도 늦은 시간까지 아쉬웠던 부분을 연습하게 자리에 눕는다. 복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게 나의 장점이다. 아쉬운 부분을 결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는 3월 25일과 26일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고 들었다.

첫 앨범을 내고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오로지 내 곡만으로 레퍼토리를 채울 수 있게 됐다. 게스트 없이 단 3명의 연주자만 무대에 오른다. 첫 앨범의 수록곡들도 모두 3인조 편성에 맞게 재편성했다. 연주만으로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밀도 높은 콘서트가 될 것이다. 또한 공연장 역시 음향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백암아트홀이다. 단독 콘서트 현장에서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