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이명'의 필자로 만난 10번째 인터뷰이는 싱어송라이터 수상한커튼이다.
세상에 '이명' 필자로 합류한 뒤 작성한 뮤지션 인터뷰가 불과 반년만에 두 자리수가 되다니.
이건 산업부 기자도 문화부 기자도 아니구먼.
며칠 전 수커 누님과 간만에 만나 한잔을 나누며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자세한 이야기는 이메일로 주고 받았다.
계절과 트렌드에 상관없이 언제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좋은 앨범이다.
그리고 수커 누님은 음악과 싱크로율이 정말 높다.
수상한커튼 : 이 앨범은 나와 당신을 위한 일기장
누구나 매력적인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매력만큼 뚜렷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도 드물다. 저마다 다른 매력 포인트를 가진데다, 같은 대상을 접하고도 느끼는 매력 포인트와 정도도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매력은 역시 ‘볼매(볼수록 매력 있다는 의미를 가진 은어)’가 아닐까? 우리의 지난 연애들을 돌이켜보자.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추억은 역시 ‘볼매’와 함께 연애를 했을 때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처음부터 마음을 확 잡아끌진 않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매력적이어서 부지불식간에 떠오르는 사람. 싱어송라이터 수상한커튼의 음악은 그런 매력의 음악이다.
수상한커튼은 지난해 1월부터 1년 동안 매달 곡을 만들어 싱글로 발표하는 ‘수상한 커튼의 일 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수상한커튼은 담백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곡을 부지런히 내놓으며 대중의 마음을 두드려 왔다. 꾸준한 두드림의 마무리는 그 모든 결과물들을 한 장의 앨범으로 엮어 정리하는 것이었다. 각각의 수록곡들은 대부분 접한 곡들이었지만, 앨범 한 장으로 엮여서 들리는 수록곡들은 다른 감흥을 가져왔다. 올 초 3년 만의 정규작인 3집 ‘수상한커튼의 1년’을 발표했던 수상한커튼을 뒤늦게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프로젝트였는데 고생이 많았다. 이런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2집을 발표한 뒤 타이틀곡을 제외한 다른 곡들이 소외되는 듯해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상실감이라고 말해야 하나? 딱히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데, 당시에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앨범으로 작품을 내놓는 일을 고집하는 것이 현재 음악시장의 상황과 맞지 않는 편협한 고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업의 특성상 앨범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면 쉬어가는 트랙, 타이틀, 무거운 곡 등 앨범의 리듬을 생각하면서 작업하게 돼 느슨하게 넘어가는 곡들도 생긴다. 그런 느슨함을 경계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항상 같은 분위기의 음악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의 곡들을 만들어서 발표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매달 그 달의 내 기분을 담아 곡을 만들거나 혹은 그 달에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수상한커튼의 1년’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단 한 곡을 담은 싱글이라도 꾸준히 매달 만들어 녹음하고 발표하는 과정은 몹시 지난했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느낀 점을 듣고 싶다.
지난해 1월에 프로젝트의 첫 곡이 발표됐지만, 작업은 훨씬 전부터 시작된 터라 5월께에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였다. 당시에는 “내가 한 달 싱글을 내지 않는다고 누가 알겠어? 그냥 잠수를 타버릴까?”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 무렵을 버티고 여름을 넘기니 생활에 리듬이 생겨, 스케줄이 척척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리듬이 지겨우면서도 은근히 즐거웠다. 정신없이 만들어서 바로 싱글을 발표하다보니 피드백도 앨범을 발표했을 때보다 빨라 소통이 잘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한 매달 싱글을 기다려주는 분들이 생겨 감사하고 또 큰 힘이 됐다.
주요 수록곡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듣고 싶다.
첫 트랙 ‘그녀에게’는 영화 ‘Her’를 보고 만든 곡인데, 영화에 흐르는 분위기와 내용이 내 음악과 많이 닮았다고 느껴져 음악으로 풀어냈다. ‘너를 사랑해’는 조금은 슬픈 느낌을 주는 고백송, ‘잘 지내나요’는 사라져 가는 공간들에 관한 노래, ‘항상 당신 곁에’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살가운 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은 노래이다. 지나가는 여름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늦여름밤’, 추석에 보름달을 바라보며 만든 ‘보름달’, 제목 그대로 성탄절의 기분을 담은 ‘메리 크리스마스’처럼 곡을 발표할 당시의 계절감을 강조한 곡들도 있다.
마지막 트랙 ‘다시’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향한 위로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시’는 내 목소리(진심?)를 가장 많이 담은 곡이다. 사실 주변에선 12월에 이 곡을 싱글로 내야 한다고 말들을 했지만, 내가 고집을 부려서 12월을 한 달 비우고 1월에 이 노래를 12번째 싱글로 발표했다. 힘들게 돌고 돌아왔는데 원점이라는 허탈함. 하지만 처음과는 사뭇 다른 시작. 같지만 다른 시간들. 어쨌든 다시 툭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해야하는 숙명 혹은 설렘. ‘수상한 커튼의 일 년’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나는 또 다시 곡을 쓰고 노래를 해야 하니 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다시’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나? 이 곡에 담은 것도 내 복잡한 마음으로, 9번째 트랙 ‘이방인’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이기도 하다.
수록곡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혹은 가장 속을 썩인 곡은 어떤 곡인가?
정말 많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8월에는 곡이 잘 안 나와 싱글을 못 낼뻔 했고, 데드라인에 앞서 이 곡을 발표해야하나 뒤엎어야하나 고민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선택에 기로에 서면 늘 뒤엎는 선택을 했다. ‘좋은 계절’, ‘너를 사랑해’, ‘온리 유’, ‘메리 크리스마스’는 믹스까지 끝낸 뒤 다시 편곡을 하고 녹음했던 애증의 노래들이다. 특히 ‘메리 크리스마스’는 스트링 편곡까지 마쳤는데, 화려한 스트링이 입혀지니 노래와 가사에 집중이 안 된다는 의견들을 수렴해 뒤엎고 소박하게 피아노로만 연주해 녹음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다르게 다듬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저마다 다른 곡들을 한 공간에 모았지만, 이 모음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12곡을 하나로 모아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보통 앨범 작업은 일정 기간 동안 곡을 쓰면서 어느 정도 곡이 모이면 편곡과 녹음 과정을 거쳐 다듬어지다 보니 정제되고 한 가지 색깔과 흐름을 갖게 된다. 그와 비교하면 이번 앨범은 그야말로 날것의 앨범이 아닌가 싶다. 가장 정직한 수상한커튼의 2015년 보고서이다. 지난해 몇 월에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도, 노래만 떠올리면 바로 모든 기억이 떠오른다. 일기장과 같은 앨범이다. 나는 이 앨범으로 이야기들을 전하기보다 나누고 싶었다. 나는 공연을 자주 하진 않는 편이다보니, 공연 대신 매달 노래로 이야기를 나눴다.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수상한커튼의 매력을 요약하면 가랑비처럼 스며들어 어느새 젖게 만드는 목소리와 멜로디라고 생각한다. 2집도 그런 면을 강조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3집은 2집보다는 다소 명도가 높고, 사운드 전반에 깔려 있던 안개가 걷힌 듯한 느낌을 준다. 사운드에선 지난 앨범에 비해 어떤 면을 중시했나?
매달 대중의 피드백을 접하면서 작업해 그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대중이 쉽고 편안하게 공감하면서 노래를 들어주길 바랐다. 마치 “나는 이번 달에 이런 기분인데 넌 어땠어?”라고 묻듯이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말이다. 곡에 심오한 의도를 담진 않았다. 그때그때 그 노래에 가장 충실한 사운드, 그 노래의 주인공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사운드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젠체’ 하지 않는 것이었다. 좋은 글은 쉽고 명료하지 않나? 나도 그렇게 음악을 만들어 들려주고 싶었다. 쉽고 명료하게!
담백한 가사가 없었다면 이 같은 음악적 특징을 잘 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특별히 문학적인 가사를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턱하니 울리는 가사들이 많다. ‘좋은계절’의 “서럽게 울었던 긴 시간을 건너 비로소 아픈 가슴은 좋은 계절에 내려놓네” 같은 가사는 좋은 예이다. 평소 가사를 쓰는 방법에 대해 듣고 싶다.
‘좋은계절’은 가사 전달에 큰 중점을 둔 곡이긴 하지만, 가사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부끄럽다.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조금 웃기지만 나는 멜로디를 해치지 않는 가사, 즉 멜로디에 앞서가지 않는 가사가 좋은 가사라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그래서 그 멜로디에 어울리는 어감을 만들고 다듬는 방법으로 가사를 쓴다. 조금 이상하게 작업하는 편인 것 같은데,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의 주제를 정해 산문으로 푼다. 그리고 멜로디에 맞게 줄이고 줄여서 다듬는다. 메시지 전달보다는 단어가 음악적으로 들리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가사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분들께 조금 죄송하다.
실용음악과에서 기타를 전공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지만, 솔로 데뷔는 조금 늦은 편이다. 늦어도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를 통해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가?
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끼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한 가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향을 갖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적 자질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내게 음악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취하고 버릴 때 끝까지 남아 있던 것은 음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미련하게 하는 것이 내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을 흥미롭게 읽고 있는데, 내가 지향하는 뮤지션의 모습이 그 책에 담겨 있는 것 같다.
향후 공연 일정과 새로운 작품 발표 계획을 듣고 싶다.
오는 18~19일 강원 춘천시 남이섬에서 열리는 ‘레인보우 아일랜드 뮤직&캠핑 2016’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올해에는 무조건 놀을 생각이었는데 잘 되지 않는다. 올해 안에 또 다른 싱글로 팬들에게 인사를 드릴 생각이지만, 당분간 데드라인을 만들진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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