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피는 꽃들 중 가장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맛을 자랑하는 꽃은 역시 참나리가 아닐까 싶다.
참나리는 거리 곳곳에 흔하게 보이는 꽃인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 아름다움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7월 8일자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지난해 이맘 때, 기자와 기자의 아내가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둘은 아침부터 함께 성산일출봉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성산일출봉의 높이는 182m입니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언덕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높이이죠. 그러나 평소 운동부족 상태였던 둘은 고작 몇 발짝을 떼었을 뿐인데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도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을 차마 아내에게 못하겠더군요. 둘은 그렇게 꾸역꾸역 성산일출봉 정상을 향해 힘겨운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봉우리의 중간쯤까지 오른 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땀을 식히며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가랑비가 온 몸을 슬그머니 적시는 흐린 날이었지만,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제주도의 풍경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강렬한 주홍빛이 곳곳에서 시선을 자극하더군요. 강한 바람이 부는 높은 곳의 험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꽃, 바로 참나리였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에서 촬영한 참나리.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참나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입니다. 꽃의 이름 앞에 붙은 ‘참’이란 접두어는 그 꽃이 사람에게 여러 쓸모가 있음을 의미하죠. 참나리는 예부터 약용, 식용, 관상용으로 두루 쓰여온 식물입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고, 알뿌리는 볶아서 먹습니다. 특히 알뿌리는 전분과 단백질을 많이 함유해 흉년에 구황작물로 많이 이용돼 왔습니다. 여담이지만 멧돼지가 참나리의 알뿌리를 무척 좋아해 파먹다가 종종 농가에 피해를 입히기도 한답니다. 서양에선 백합을 풍요의 상징으로 여긴다는데, 우리의 조상님들도 백합과인 참나리꽃이 많이 피는 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더군요. 꽃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동ㆍ서양 모두 비슷한가 봅니다.
참나리는 도시에서도 매년 여름이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섬에서 만난 참나리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습니다. 흐린 하늘 아래에서 참나리의 주홍색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더군요. 낯선 공간은 도시에선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참나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뒤로 말려 하늘로 솟아오른 꽃잎과 그 빛깔 고운 주홍색 꽃잎 곳곳에 박힌 검붉은 반점, 꽃잎 밖으로 길게 뻗은 수술과 암술, 그리고 수술 끝에 매달려 흔들리는 짙은 갈색 꽃밥. 정말 관능적인 자태였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바위틈이라는 배경은 참나리의 관능미에 아슬아슬한 맛까지 더해줬습니다. 가쁜 숨을 고르며 가만히 참나리를 보고 있노라니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더군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일출봉에서 촬영한 참나리.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참나리의 꽃말은 ‘깨끗한 마음’입니다. 거리를 걷다가 화단에서 참나리를 만나시거든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자태를 감상해보시죠. 그 자태를 하나하나 뜯어 눈에 새기다보면 꽃말을 납득할 수 있는 순간과 만날 수 있게 될 겁니다. 꽃을 바라보는 일만큼 어지러운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일도 드무니 말입니다.
123@heraldcorp.com
'식물왕 정진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물왕 정진영> 62. ‘봉숭아’로 붉게 물든 손톱이 부르는 아련한 추억 (0) | 2016.07.21 |
---|---|
<식물왕 정진영> 61. 여름에는 산삼보다 ‘도라지’가 더 그립다 (0) | 2016.07.14 |
<식물왕 정진영> 59. 여름의 환희를 알리는 불꽃놀이 ‘자귀나무’ (0) | 2016.06.30 |
<식물왕 정진영> 58. 설렘 간직한 여름의 해바라기 ‘루드베키아’ (0) | 2016.06.23 |
<식물왕 정진영> 57. 근심 많은 여름날에는 ‘원추리’를 만나야 한다 (0) | 2016.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