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이명'의 필자로 15번째로 만난 뮤지션은 강백수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지는 꽤 됐는데 본업 때문에 짬이 쉽게 나자 않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주말은 역시 밀린 가욋일을 하는 날이다.
강백수는 밴드 9와숫자들과 더불어 잘 쓴 가사의 힘을 느끼게 만드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다. 백수는 전작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이번 앨범에서 백수는 시선을 주변부로 넓히며 흔한 풍경을 흔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를 발휘했다. 좋은 앨범이다.
이미 몇 번 이야기했지만, 백수야 앨범 만드느라 수고했다.
강백수 : 서른에 맞닥뜨린 인생은 실전이었다
서른이란 나이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스무 살 청년이 세상살이의 만만치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시점이 바로 서른 아니던가. 책임져야 할 것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은 그에 미치지 못해 좌절하는 시점도 서른 즈음이다. 고(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강백수는 우리 주변의 흔한 풍경을 흔하지 않은 풍경으로 연출할 줄 아는 재주를 가진 싱어송라이터이다. 지난 2013년에 발표된 그의 첫 정규앨범 [서툰 말]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가사의 힘을 잘 보여줬던 수작이었다. 이 앨범의 대표곡 ‘타임머신’을 듣고 울컥해진 마음에 오랜만에 부모님께전화를 드렸던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올해 나이 서른을 맞은 그가 내놓은 두 번째 정규앨범 [설은] 역시 강백수 특유의 가사 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시선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 강백수를 최근 광화문의 한 술집에서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 번째 정규앨범이다. 간단한 소감을 듣고 싶다.
1집이 나왔을 때 느낀 감정이 벅차오름이었다면, 2집을 내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내가 이 일을 오랫동안 지속해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예전에는 “다음 앨범을 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음 작업은 어떻게 해 볼까?”라고 생각하게 됐다.
‘설은’이라는 앨범 타이틀은 중의적인 느낌을 준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서른 살을 의미하기도 하고, 설익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른 살이 되면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의 주인공처럼 철 든 어른이 돼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나는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설익어 있다. 나 같은 사람들, 서른 살 언저리의 설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곡에 담아내려고 했다.
이번 앨범을 제작하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
1집은 온전히 나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면, 2집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진솔함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1집에 비해서 정돈된 느낌이 많이 든다. 2집은 1집과 어떤 차이점을 두려고 했는가?
1집은 만들었다기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앨범을 제작하는 각각의 과정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만들고 싶은 앨범의 상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다소 뒤죽박죽이 돼버린 면이 있다. 2집은 의도한 바대로 차근차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편곡 과정에선 앨범 전체의 사운드가 통일감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썼고, 곡들을 선정하고 배치할 때에도 트랙들 간의 유기성을 고려했다. 풀 렝스(Full-Length)앨범이라면, 단지 곡들의 나열이어서는 안 되고 앨범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앨범 수록곡에 전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싶다.
지난 2014년 첫 산문집 [서툰 말]을 쓸 때였다. 새벽에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다가 24시 코인 빨래방에서 울고 있는 내 또래의 사내를 발견했다. ‘24시 코인 빨래방’은 서러운 일도 많은 우리 나이. 그 사람이 내가 쓰고 있던 책의 독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만든 곡이다. 처음에는 시로 써서 책에 실었다가 나중에 곡을 붙였다.
‘오피스’는 지난 2015년에 출간한 두 번째 산문집 [사축일기]의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넣은 트랙이다. 종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선배를 만나러 갔던 어느 봄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직장인들이 짧은 점심시간동안 청계천 난간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봄 햇살을 쬐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 곡을 만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많아지는데,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행복의 조건은 더 까다로워진다. ‘삼겹살에 소주’는 아직 그렇게 되지 않은 내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어 쓴 곡이다.
‘울산’은 우리 외갓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지만, 그만큼 새로운 가족도 생겼다. 누군가가 떠나고, 또 누군가 태어나며 가족의 역사는 이어진다. ‘일회용 라이터’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며 정처 없이 떠도는 라이터의 시선을 빌려 사회 곳곳에서 한숨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곡이다. ‘와일드 사파리’는 서울 곳곳에 있는 집창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선배 자취방 근처에서 본 비인간적인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이 곡은 시로 먼저 써서 발표했던 곡이다.
‘가르시아’는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야구선수 구스타프 카림 가르시아의 플레이에 나의 청춘을 빗댄 곡이다. 과거 MBC ‘위대한 탄생’에 출연해 이 노래를 부르고 작곡가 용감한형제에게 혹평을 듣고 탈락한 일이 있었다. ‘기억해’는 러브송(?)이다. 사랑은 기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반가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구성물 중 하나인 두려움을 노래했다.
선량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세상 역시 선량해질 테니 서러울 일도 없겠지만, 사실 세상은 일부 선량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선량하지 못한 시스템이 지배하고 있다. ‘거지폴카’ 앞의 여덟 트랙에 등장하는 서러운 사람들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거지폴카’는 이 서러움들이 단지 눈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전복시킬 에너지가 되는 상상을 담은 곡이다.
전작에서 ‘찌질함’과 ‘솔직함’이 강하게 느껴졌다면, 이번 앨범에선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가사가 두드러진다. 이 같은 변화의 이유는 무엇인가?
‘찌질함’은 못난 이에 대한 연민에 해학을 더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해학은 결국 웃음인데, 20대 때의 고민은 웃음으로 승화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찌질함’이라는 정서가 앨범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생을 실전으로 맞닥뜨린 30대의 고민은 차마 웃어넘길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당장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세대가 되고 보니 연애의 실패나 타인에 대한 열등감 같은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돼버렸나보다.
자주 듣는 질문일 테지만, 뮤지션으로서 글쓰기와 시인으로서 글쓰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다른 제약을 받는다. 대중음악은 이 땅에서 문학보다 더 대중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노랫말은 보다 많은 자기검열을 필요로 한다. 애써 만든 노래가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홍보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리고 대중음악은 인쇄매체를 통해 읽을 수 없고 청각을 통해 들려줘야 하는 장르이기 문학작품보다 쉽게 써야한다. 활자로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을 음악적인 요소로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은 대중음악의 편리한 점이다. 시인으로서의 글쓰기는 그 반대라고 보면 된다. 활자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안에선 별다른 제약 없이 글쓰기가 가능하다.
이번 앨범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그 유명한 하헌재의 참여이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가?
전업 뮤지션은 아니지만 워낙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친구여서 그동안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하헌재와 함께 ‘하헌재 때문이다’의 라이브 영상을 찍기도 했다. 하헌재는 그동안 비정규직(인턴) 생활을 하느라 강백수밴드의 고정 세션으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돼 생활에 안정이 생기며 밴드로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공연 때마다 함께 하고 있다.
평소에 멤버들과 합주할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 궁금하다.
한 팀이 아니라 강백수 개인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강백수밴드 활동이 그들 삶의 전부가 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합주는 짧은 시간동안 매우 타이트하게 이뤄진다. 평소에는 당장에 있을 공연에 올릴 곡들의 합을 맞추는 데에 집중하고, 내가 신곡의 스케치나 가이드를 가져가는 날이면 편곡의 전체 또는 일부 과정을 함께 하는데 시간을 사용한다.
곡을 만드는 작업은 어떤 형태로 이뤄졌는가?
앨범을 내기 위해 몰아서 창작하진 않았고, 평소에 생각날 때마다 곡을 써 왔다.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을 메모하거나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고, 작업실에서 혼자 하나의 글로 정리한다. 거기에 멜로디를 붙이고, 코드를 정한다. 여기까지를 작사ㆍ작곡의 과정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편곡은 곡마다 다르다. 내가 대략적인 악기 연주까지 확정해서 가이드를 녹음한 경우도 있고, 합주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며 작업한 곡도 있다. 몇몇 곡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황치연에게 편곡을 전적으로 맡겼는데,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가져와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사운드 또한 전작에 비해 또렷하게 들리는 편이다. 녹음과 마스터링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녹음은 ‘스튜디오 던바’의 박열 기사와 함께 진행했고, 믹싱과 마스터링은 오랜 친구이자 1집의 녹음과 마스터링을 담당했던 한치가 맡았다. 한치는 나와 같은 소속사의 밴드 ‘전산실의 청개구리’의 멤버이기도 하다. 나는 엔지니어링이나 사운드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편이라 이 부분만큼은 소속사인 북극곰 사운드의 송대현 대표가 진두지휘해줬고, 나는 수정 과정에서 조금 의견을 보탰다. 앨범 제작회의 때 사운드 콘셉트에 대한 의견이 서로 일치했기 때문에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전작과 비교해 사운드 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1집의 사운드는 매끈하지만 평이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강백수와 강백수밴드 고유의 질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거칠거나 투박한 부분들을 애써 예쁘게 다듬지 않았다. 악기들이 그저 한 덩어리의 반주로 들리기보다는 각각의 소리가 모두 생동감 있게 들리는, 밴드 사운드의 특징을 살리려고 애썼다. 보컬은 까다로운 디렉팅으로 인위적인 소리를 만든다거나, 여러 번 끊어 녹음하며 완벽을 기하는 과정을 가급적 배제하려 했다. 내가 갖고 있는 본래의 목소리로 자연스러운 감정선을 표현하는 방식을 최우선으로 뒀다.
수록곡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혹은 속을 썩인 곡은 무엇인가?
유독 ‘오피스’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다른 곡에 비해 팝적인 요소가 강한 곡이기에 자칫 앨범에서 홀로 튀는 트랙이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편곡도 많이 바뀌었고, 녹음도 오래 걸렸다. ‘와일드 사파리’의 경우 강백수의 앨범이지만 한 트랙 정도는 내가 조연이 되고 연주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곡을 싣고 싶어 넣은 곡이다. 기껏 자기들 실력을 뽐내라고 솔로도 많이 주고, 화려한 플레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더니, 연주자들은 그 곡에 가장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자기 연주가 잘 들리니 아쉬운 부분들도 뚜렷하게 들리나보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집중해 들어줬으면, 혹은 이 부분만큼은 놓치지 말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가?
어떤 트랙에 집중해서 들어줬으면 좋겠다기보다는, 앨범 전체를 통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어린 시절에는 CD를 구입하면 설레는 마음으로 부클릿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음악을 들었었는데, 갈수록 삶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그럴 여유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잠시 여유가 생기는 때가 있다면, 눈을 감고 각각의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1번부터 9번까지의 모든 트랙을 이어서 들어줬으면 좋겠다.
공연 일정 및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묻고 싶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큰 무대와 작은 무대를 가리지 않고 가능한 만큼 무대에 서고 싶다. 아쉽게도 대규모 페스티벌 무대 경험이 아직 없다. 꼭 한 번 대규모 페스티벌 무대에 서서 내가 좋아하는 ‘떼창’을 경험해보지 못한 규모로 들어보고 싶다. 장기적인 목표라면 언젠가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서 공연을 해 보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행복한가?
행복한 순간들은 있지만 행복한 시절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기억으로 녹록치 않은 시절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고단한 모두에게 그런 보석 같은 시간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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