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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막연하고도 나른한 일상에 대한 잡담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1. 9. 29.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렸다. 예보에 따르면 이 비가 그친 후 날씨가 더 싸늘해진단다.

비가 그치면 벼이삭이 여물대로 여문 들녘에선 바람소리가 더 서늘하게 들릴 터이다.

새벽볔 창문 틈새로 기어들어오는 바람이 차갑고 묵직하다. 긴 여름이 긴 겨울과 자리바꿈하려는 모양이다.

여름과 마찬가지로 겨울의 스펙트럼 역시 봄과 가을의 한복판까지 깊게 뻗어있다.

 

올해엔 꼭 좋은 여자를 만나 앞날을 도모하고 싶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내년이 코앞이다.

정신없이 바빴다는 핑계부터 변명처럼 흘러나오지만 실은 내 게으름이 문제일 것이다.

10월에 가장 친한 친구녀석과 선배 하나가 결혼한다. 이런 부지런한 사람들 같으니.

 

나는 집에서 끼니를 떼우는 일이 극히 드물다.

집에 쌀이 없는 것도 아닌데 집에서 끼니를 떼우다보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와 소화를 방해한다.

소화불량 증상은 아마도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시작된 듯하다. 

아버지 때문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직장 생활을 한지 만 2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어머니 없는 집에서 홀로 끼니를 떼우는 일은 어색하고 힘들다.

아버지는 늘 내게 왜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느냐고 타박이지만 내 맘이 늘 그렇다.

아버지께서도 좋은 인연을 만났으니 이제 다시 집을 떠날 때가 됐다.

 

사실 올 초까지만해도 도저히 집에서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입사 후 부지런히 월급을 쪼개 적금을 부었지만 박봉인 지방지 기자 생활을 하다보니 모이는 돈이 그리 크진 않았다.

그런데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수상 이후 갑작스레 큰 돈이 생겼다.

여기에 그간 모은 돈을 합치니 대전에서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아파트 한 채 살 돈이 내 수중에 생겼다.

물론 서울에선 조그만 원룸 하나 매입할 돈 밖에 안 되지만 말이다.

어찌하다보니 내 또래 어지간한 직장인들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은 셈이 됐다.

늘 남들보다 직장생활이 늦어서 언제 돈 모아 장가가나 걱정했는데 그 걱정이 한큐(?)에 어느 정도 해결됐다.

또 어디가서 소설가 노릇까지도 할 수 있게 됐고.

이제 집에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니 여자가 먼저 생겨야 나가지... 쩝!

 

얼마전 집 근처 빈 매장에 편의점이 들어와 개업했다.

집에서 끼니를 떼우려다 그냥 편의점으로 향했다.

 

 

 

 

비래동,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상권이 암울한 곳이다.

어느 곳 하나 오랫동안 영업을 하는 상가를 보지 못했다.

새로 생긴 편의점 또한 기존에 망한 화장품 가게 자리에 생겼다.

게다가 그 규모는 인근 모든 편의점을 통틀어 최대다.

앞으로 과연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으흠... 그건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컵라면의 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화춘 짬뽕'이다.

물론 포장지 위에 적힌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가지의 원재료와 첨가물들의 이름을 읽다보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몸을 휘감지만 말이다.

뭐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어때! 그거 먹는다고 수명이 줄어들랴!

 

출근하기엔 너무 시간이 일렀다.

그런데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책도 읽기 싫었다.

놀면 뭐해? 그냥 출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