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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추억의 고기 한 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8. 4. 8.



추억은 음식의 맛을 보정하고 배가하는 조미료라는 사실을 오늘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제 대전 큰집에서 차례를 지낸 뒤 세종으로 돌아오다 충남대 앞을 지났다.

나는 20살부터 21살까지 2년간 충남대에 적을 뒀다. 이후 나는 수능을 다시 치러 한양대로 옮겼지만 20대의 즐거운 추억은 모두 충남대에서 쌓았다. 

한양대에 적을 둔 시간은 8년으로 충남대에 적을 둔 시간보다 훨씬 많지만, 나는 충남대에서 시트콤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생활을 보냈을 정도로 즐겁게 지내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대전과 세종을 오갈 때면 충남대 교문 앞을 반드시 거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뭔가 아련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충남대엔 이른바 ‘궁동 로데오거리’라는 상권이 형성돼 있다. 선배들은 이 곳을 '압구궁동'이라고도 불렀다. 좀 낯이 뜨겁긴 하지만. 

상권의 규모가 상당해 카이스트, 목원대 등 인근의 대학교 재학생들도 이곳으로 원정을 와서 놀고 간다.

차를 몰고 충남대 근처를 지나던 나는 그곳이 어떻게 변했나 궁금한 마음이 들어 잠시 차를 세우고 로데오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변화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로데오거리를 걷던 나는 한 골목에서 걸음을 멈췄다. 오래전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고깃집 ‘싸다돼지마을’이 아직도 영업하고 있었다. 올해 개업 22주년이라 소주를 2000원에 판매한다는 현수막과 함께.

고깃집 앞에서 나는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과거로 기억을 되돌렸다.




‘싸다돼지마을’은 내가 떳떳하게 공식적으로 소주를 먹은 첫 장소다. 물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소주를 몰래 수도 없이 마시긴 했지만... 

18년 전 이맘때, 이곳에서 나는 동아리 선배들로부터 소주를 처음 얻어먹었다. 긴장과 이완을 오갔던 그 날의 술자리에 관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후에도 나는 이곳에서 수도 없이 술을 마셨다.


이 집의 메인 메뉴는 고추장 불고기다. 대패삼겹살에 고추장 양념을 더 해 불에 졸이는 메뉴인데 가격이 저렴하다. 지금도 1인분에 5500원인데 당시엔 반값도 안 했다.

나는 고추장 불고기를 기름이 잔뜩 낀 양념과 함께 수저로 떠먹은 걸 좋아했다. 결코 고급지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싸구려와 저렴함을 오가는 오묘한 맛이 참 좋았다. 제육볶음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다. 이 맛은 오직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다. 이 맛과 비슷한 맛을 찾아 꽤 여러 고깃집을 찾아다녔는데, 같은 맛을 내는 집은 없었다.




오늘 나는 준면 씨와 함께 이 집을 찾았다. 17년만이다. 솔직히 누군가를 데리고 와서 맛집이라고 먹을 집은 아니지만, 오래전 기분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예전에 그랬듯이 수저로 고기를 떠먹었다. 고기 한 숟갈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수많은 기억을 한꺼번에 소환했다. 무언가 벅찬 기운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와 눈물겨웠다. 나는 준면 씨에게 시시콜콜한 오래전 이야기들을 수다쟁이처럼 쏟아냈다. 


고추장불고기 3인분, 김치말이 국수, 소주 1병, 콜라 1병을 먹었는데 계산을 하니 24,900원이었다. 이 집은 여전히 간판값을 하고 있었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올해부터 17년이 더 흐르면 내 나이가 55살이다. 그때에도 이 집이 여전히 영업하고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