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르포 <당선, 합격, 계급>
이 르포는 장편소설공모전과 기업의 공채 시스템을 비교해 간판을 얻은 자와 얻지 못한 자 사이의 벽을 짚는다. 기자 출신 작가답게 방대한 취재로 확보한 팩트가 설득력을 더한다.
작가는 독자가 검증되지 않은 신인의 소설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장편소설공모전이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장편소설은 긴 시간 투자해 읽어야 하는데, 읽고 손해를 봤다는 느낌을 받으면 안 되니 말이다. 이 때문에 독자는 검증된 작가의 소설만 고르고 신인은 주목받기 점점 어려워진다.
거액의 상금을 내건 장편소설공모전에 당선된 소설은 그 자체로 독자에게 검증이 이뤄졌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신인이 독자를 더 많이 만날 기회로 이어진다. 이 같은 기회를 얻기 위해 수많은 작가 지망생이 공모전에 몰린다. 심지어 이미 등단한 작가까지 주목받을 기회를 얻기 위해 공모전에 뛰어든다.
이 과정에서 당선되지 못한 절대다수는 좌절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장편소설공모전을 부정하진 않는다.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기회이고, 통로는 좁지만, 모두에게 공정하게 문은 열려 있으니 말이다. 이는 대기업 공채로 대표되는 취업 현실과 대체로 비슷한 광경이다. 작가의 "누군가의 거대한 악의가 없어도 부조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기자 출신 답게(?) 작가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언론의 역할은 문제점을 지적해 화두를 던지는 데까지이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을 내놓는 건 전문가들의 몫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언론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역할을 넘어 해결 방안까지 내놓으려고 하면, 결국 정치로 이어진다. 보수지와 진보지를 막론하고 언론이 자꾸 선을 넘어 기사로 정치를 하려고 드니 국민이 반감을 보이는 것 아닌가. 국민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언론에 정치를 하라고 자신의 권리를 위임한 일이 없다.
다만 작가는 현직 기자가 아닌 만큼 슬쩍 자신의 의견을 끼워 넣는 일까지 피하진 않았다.
작가는 부조리가 정보의 불균형에서 온다고 봤다. 작가는 변호사를 구하려는 의뢰인을 예로 든다. 법률시장은 매우 폐쇄적이어서 의뢰인이 변호사의 승소율이나 패소율을 알기 어렵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선택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요소는 출신 학교, 전관 여부, 사시 출신인지 로스쿨 출신인지 등뿐이다. 만약 의뢰인이 쉽게 변호사의 승소율이나 패소율을 알 수 있다면, 간판만 보고 변호사를 고르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작가는 독자 중심의 독서공동체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작가가 말하는 독서공동체는 능동적으로 작가를 발굴하고 다양한 작품을 응원하는 형태로, 적극적인 서평을 통해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비대칭적인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부조리를 공동선을 통한 시스템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쎄... 작가 본인도 이 결론을 너무 낭만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관적인 진단이지만 나는 각자도생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본다. 공동선으로 부조리를 해결하기엔 눈앞에 놓인 생존경쟁 공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p.s. 이 르포는 고액의 상금 내건 장편소설공모전 중에서 가장 실패한 예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꼽는다. 수상자 출신인 내 입장에선 씁쓸한 부분이지만, 작가의 지적을 인정한다. 이 공모전은 조선일보가 시의적절하게 매우 공들여 만든 공모전이다. 그러나 정작 응모작을 평가하는 이들 중에 장르소설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 작가는 "선배 문학 엘리트가 후배 문학 엘리트를 뽑는 구조였고, 특히 그런 공식에 가장 충실했던 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이었다"고 지적한다. 나 또한 <도화촌 기행>을 장르 소설로 생각해 본 일이 전혀 없다. 오히려 가장 리얼리즘에 충실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상으로 이어져 어안이 벙벙했다. 장르소설 전문가가 많았다면 과연 내 소설이 당선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감히 수상을 포기할 용기도 없었다. 일단 상금이 매우 크지 않은가.
다만 작가의 취재 중 나와 관련한 부분에 사소한 오류가 있었다. 작가는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대상 당선자 다섯 사람 중 이후에 소설 단행본을 출간한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 그나마 딱 한 권을 낸 건데, 당선작의 속편이었다. <치우와 별들의 책>으로 1회 대상을 수상한 이준일 작가가 <치우와 파수꾼의 탑>을 낸 것이다"고 설명한다.
이 르포가 출간되기 두 달 전에 나는 <침묵주의보>를 출간했다. <도화촌 기행>보다 리얼리즘 요소를 더 강화한 소설로, 나는 이 소설이 르포처럼 읽히길 원했다. 그 부분 취재는 이뤄지지 않았던 듯하다. 무려 7년 만에 신작을 낸 게으른 놈인 데다 주목받을 작가도 아닌 나를 신경 쓰긴 어려웠을 테지만, 다음 판이 나온다면 수정되길 소소하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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