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반가움은 자신의 책을 손에 쥐게 됐을 때 느낄 기쁨을 알기 때문이고, 안타까움은 그 책을 손에 쥐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내가 언론계에 발을 들인 지 올해로 10년 째인데, 나재필 선배는 내가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이자 지금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다.
나 선배는 편집기자로 25년 일하며 편집기자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수차례나 휩쓸었던 실력자이지만, 선배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편집만큼 맛깔나는 그의 글을 좋아했다. 편집기자로 일하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지면에 칼럼을 연재하고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 선배가 자신의 생애 절반을 몸 담아온 언론계에서 떠나 바이크를 타고 전국 곳곳을 유랑(여행보다 이 단어가 더 적합하다)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놀라웠다. 선배의 친형이자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 담아온 나인문 국장께서도 유랑에 동행했다. 유랑의 결과가 무엇일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책이었다.
나인문ㆍ나재필 공저 '기자형제 신문 밖으로 떠나다'(행복에너지)는 바이크 유랑의 결과물이지만 여행기는 아니다. 어느 지역의 풍경이 아름답고 어느 지역에 맛집이 많은지 궁금하다면 집어들만한 책이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여행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지 궁금하다면 일독할 가치가 있다.
이 책의 주된 소재는 전국 곳곳의 자연마을(里 단위)이다. 저자들은 바이크로 특이한 이름을 가진 자연마을을 찾아다니며 무려 3794km를 달렸다.
충북 영동 고자리, 충북 충주 야동리 등 야릇한 이름을 가진 마을부터 경북 경주 모서리, 경북 예천 갈구리, 원주 양아치, 충남 예산 고도리 등 웃긴 이름을 가진 마을까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희한한 이름을 가진 마을들이 많았나 싶어진다.
저자들은 언어유희를 즐김과 동시에, 마을 이름의 뜻을 풀어보면 대부분 어감과 아무런 상관 없음을 밝히며 오해를 풀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저자들의 다채로운 인문학 지식과 경험을 마을의 이름과 엮으며 종횡하는 썰이 이어진다.
저자들은 모서리가 모암산의 서쪽 마을임을 밝히며 혁신을 이뤄냈던 사람들 상당수가 변두리에서 출발했음을 알려주고, 고도리가 높은 골짜기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도박의 중독성을 경계한다. 또한 저자들은 야동리의 '야(冶)'는 대장간과 관련을 갖고 있으며, 양아치의 '치'는 고개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등 흥미로운 정보 전달도 잊지 않는다.
오랜 세월 기자로 일하며 현장에서 느낀 부조리도 언어유희 속에서 날카롭게 삐져나온다. 경기도 용인시 완장리에선 완장을 찬 이들의 부도덕을 질타하고, 경북 경산리 아사리에선 구치소에서 계란 프라이를 주니 마니를 논하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꼬집는다.
좋은 부분이 있다면 아쉬운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출발' '여정' '시련' '극복' '귀로' 등 크게 다섯 챕터로 나뉘어 있는데, 앞서 설명한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챕터는 '여정' '시련' 등 중반부다. 이런 장점을 첫 부분부터 잘 살렸다면 훨씬 일관성을 가진 결과물이 나왔을 듯해 아쉽다. 서로 다른 저자의 글을 비교해 보는 맛도 공저의 재미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글이 어떤 저자의 글인지 명확하지 않아 아쉽다. 정체성을 알기 어려운 표지와 설명 없이 실린 사진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이 책이 잘 팔려 새로운 판을 찍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정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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