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은 여행이 어떻게 음악으로 우아하게 기록될 수 있는지 보여준 수작이다.
부디 소피&필로스의 이번 앨범을 통한 방황이 연착륙으로 끝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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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필로스: “여행은 결국 돌아올 곳을 찾기 위한 고민과 과정”
대중음악에서 여행은 다양한 형식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며 청자를 매혹해 온 주제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가 경춘선을 젊음과 낭만의 명소로 만들었고, 최근에는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이 괜스레 많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지 않았던가. 여행은 가끔 방황과 구분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알고 떠나면 여행, 모르고 떠나면 방황”이라며 여행 전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는 이유일 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예상치 못한 방황이 멋진 풍경보다 여행의 기억에 더 오래 남지 않던가. 소피&필로스(Sophy& Philos)의 두 번째 EP [항해에서의 한 철]은 정체성을 고민하며 방황해 온 경계인이 자신의 지난 행보를 우아한 필치로 담아낸 기록이다.
소피&필로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여에 걸쳐 인디 뮤직 전문 기자와 문화기획자로 활동해 온 ‘김기자’의 분신이다. ‘김기자’는 지난 2011년 돌연 그간의 활동을 멈추고 소피&필로스란 이름으로 첫 EP [憧憬少女 Meet 東京少年(동경소녀, 동경소년을 만나다)]를 발표하며 뮤지션으로 데뷔했다. 일본인 연주자들과 함께 포크, 록,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여행이란 주제로 엮어 서정적으로 담아낸 이 앨범은, 잠깐의 외도로 만들어진 결과물로 취급하기엔 만만치 않은 결과물이었다. ‘김기자’는 이 앨범의 작사·작곡·편곡·연주·프로듀싱까지 도맡는 내공을 보여줬다. 문제는 그로부터 소피&필로스가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세간에서 잠시 잊힌 소피&필로스가 최근 7년 만에 조용히 새로운 EP [항해에서의 한 철(A season of voyage)]을 발표하며 돌아왔다. 소피&필로스는 긴 여행에서 만난 자연을 향한 경이와 여행 중에 느낀 일상을 향한 그리움과 불안 등을 전작보다 더욱 서정적인 필치로 앨범에 담아낸 가운데, 다음 마디를 예상할 수 없는 전위적인 연주로 음악적인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지난 10월 31일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한 카페에서 소피&필로스를 만나 새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새 앨범을 내는 데 7년이나 걸렸다.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2011년에 첫 앨범을 내고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뮤지션인지 아닌지 정체성이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사이 인도, 일본, 뉴욕, 제주 등 여행을 많이 다녔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생각이 정리됐고, 그 사이에 시간이 좀 걸렸다.
[항해에서의 한 철]이란 앨범의 타이틀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다양한 여행지에서 쓴 곡들이고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이 과정이 느릿하고 긴 항해 같이 느껴졌다. 발매까지 오래 걸린 앨범이기도 하고. 아르투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힌트를 얻어 앨범 타이틀을 지었다.
이번 앨범을 제작하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무엇인가?
여행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 앨범 재킷처럼 나른하고 느릿하며 느슨한 여행지의 오후 장면과 비슷하게 말이다. 개인적으로 자연을 마주하며 여행지에서 치유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 본 장면들과 느낌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타이틀곡 ‘東京赤風(동경적풍)’을 비롯해 수록곡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싶다.
‘東京赤風’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길을 떠나는 모든 이를 위한 노래로, 일상으로 복귀하며 느낀 불안한 감정을 가사로 힘겹게 적었다. 첫 트랙 ‘lololi Song’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어린이를 연상하며 만든 곡으로,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깃든 동화 같은 곡이다. ‘Lal Ghat’는 인도 우다이푸르 지역 ‘랄가트’의 여행 경험을 노래한 곡을, 앨범 재킷 이미지에 풍경이 담겨 있기도 하다. ‘Sea Cloud’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만든 곡으로 거대한 자연을 향한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노래한 곡이다. ‘Sunset Bird’는 여행지에서 매일 지는 노을을 바라보던 어느 날 떠오른 노을새와 소년의 우정을 담은 곡이다. ‘The Prayer’는 선과 악, 인간을 주제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로테스크에 관한 탐구의 결과물이다. ‘Impro’는 즉흥 연주와 실험음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관심이 담겨 있다.
‘東京赤風’을 비롯한 앨범 전반부 5곡과 ‘Impro’ 등 후반부 2곡의 분위기가 한 앨범에서 어울리기엔 완전히 다르다. 어떤 의도인가?
곡들이 너무 다양해서 한 앨범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스펙트럼이 넓으므로 최대한 듣는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배치하려고 했다. 이 또한 하나의 성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다듬어지지 않은 보컬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끝까지 앨범을 들어보니 그렇게 불러야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의도한 보컬인가?
곡 대부분에 그런 목소리가 더 잘 어울려서 최대한 꾸밈 없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곡이 그런 건 아니므로 표현력이 필요한 곡은 표현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Lal Ghat’의 “그 무언가를 찾고 버리며 걷는 이방인/무언가를 얻으려 다가온 검은 얼굴들/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거지의 미소에/이미 모든 건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걸”이나 ‘東京赤風’의 “흘러가는 모든 것들 그대로 아름다운 걸/모래를 쥔 손을 펴듯 눈부시게 흩어지네” 등 가사가 상당히 회화적인 느낌을 준다. 사진보다는 스케치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가사에 어떤 느낌을 담으려고 했나?
모든 곡은 어떤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 안에 이야기가 있고 그것이 응축된 어떤 장면을 그리고 있어서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작업할 때 어떤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보는 느낌으로 가사를 쓴다. 곡 하나하나가 완결된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 이야기를 대표하는 어떤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시처럼 쓰면 가사가 된다.
전작도 그랬지만 이번 앨범에도 포크를 기반으로 클래식, 재즈 등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의 곡들이 담겨 있다. 애착을 가진 음악 스타일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앨범에도 그것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접했던 클래식과 청소년기에 들었던 포크와 옛 가요들, 20대에 들었던 록과 인디, 즉흥 음악 이후 재즈까지. 특별히 어떤 장르를 선호하진 않지만 스스로 장르적인 한계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앨범에 일본인 연주자들이 많이 참여했다. 배경은 무엇인가?
전작은 일본에 여행을 갔다가 현지 뮤지션들을 만나 제작됐다. 일본 친구들은 내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깊고 넓은 스펙트럼을 포용해 줬다. 그들은 ‘The Prayer’ 같은 개성 있는 트랙을 좋아하고, 재즈 연주자가 아닌데도 ‘Impro’ 같은 넘버의 연주가 가능했다. 기본적으로 음악에 관한 선입견이 없고 교감이 잘 이뤄졌다. 한국에서도 그런 뮤지션들을 만나고 싶다.
음악 기자로 활동을 오래 하지 않았나. 뮤지션으로서의 삶에 기자 경험이 어떤 영향을 줬는가?
10년간 다양한 음악을 듣고 수많은 공연을 본 것은 분명 자양분이 됐겠지만, 듣는 것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0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걸 음악을 만들어 보고서야 알았다. 머리로는 무엇이 세련된 건지 알아도 나 자신에 솔직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므로 아는 척할 수가 없다. 물론 앨범을 내는 과정에선 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어깨너머로 봐온 것들이 도움은 됐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집중해 들어줬으면, 혹은 이 부분만큼은 놓치지 말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가?
앨범을 만들고 나면 듣는 것은 청자의 몫이다. 그저 편안하게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면 된다. 사실 전작도 일본에서 만들어졌고 자연에 대한 언급이 많지만, 이번 앨범에 담긴 자연은 대자연에 가깝고 여행에 관한 이미지도 더 강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어디론가 떠났을 때 이 앨범을 들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여행에 관한 관심이 많다. 여행을 음악에 담은 입장에서 여행은 삶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여행은 삶의 치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여행을 통해 힐링을 많이 받았고 음악도 시작하게 됐다. 한때는 여행이 동경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것이 반복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인생이 곧 여행이라는 말이 구태의연하지 않으며, 진정 삶이 여행이라는 것을 긴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많은 순간이 있지만, 2011년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일본에 처음 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멍하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있던 시간들, 음악 하는 친구들을 만나 곡을 쓰고 공연하고 앨범 작업을 했던 신기한 시간들. 그로 인해 이후 7년 동안 길고 느린 항해를 하게 됐지만, 인생을 바꿔 놓은 순간에 대해 후회는 없다.
앞으로 서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면?
서보고 싶은 무대보다는 한국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서 제대로 활동을 해보고 싶다. 내 음악을 함께 구현해줄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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