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담당을 맡은 지 고작 3개월밖에 안 됐는데, 분에 넘치게 운이 좋은 편이다.
김훈, 이문열, 김탁환, 정유정, 장강명, 김애란 등 내가 즐겨 읽은 작품들을 쓴 작가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짧은 시간에 비해 많았으니 말이다.
어젠 새로운 산문집 ‘시절일기’를 낸 김연수 작가를 만났다.
김 작가만큼 청춘이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을 쓰는 작가가 또 있을까.
나를 매혹했던 문장을 쓰는 작가와 만나는 일은 언제나 연예인을 만나는 일처럼 설렌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미친 듯이 일독한 후 작가와 대면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인터뷰가 한참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 내용의 반의반의 반도 기사에 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기사는 문화일보 7월 25일자 25면 톱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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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산문집 ‘시절일기’ 출간한 김연수 작가
10년간 韓사회 뒤흔든 사건
작가·지인의 경험 글로 담아
“문학엔 타자 고통 애도하는 힘
일기, 자기감정 쏟아낼수 있어
산문, 독자와 더빠르게 연결돼”
작가의 나이를 문장에서 느껴지는 나이로 환산한다면, 김연수 작가의 나이는 언제나 청춘의 가운데 어딘가쯤이다. 올해로 소설 등단 25년째를 맞은 김 작가는 소설과 산문을 넘나들며 섬세하고도 감성적인 문장과 사유로 독자를 매혹해왔다. 김 작가가 자신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들과 개인사를 엮은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2004)은 십수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청춘 독자의 정전(正傳)으로 통한다.
개인의 내면에 집중했던 김 작가는 온갖 사건들로 시끄러웠던 2010년대에 40대를 보내며 시선을 사회로 넓혔다. 김 작가는 지천명을 앞두고 내놓은 새 산문집 ‘시절일기’(레제)에 이전보다 깊은 고민을 안은 ‘청춘의 문장들’을 담아냈다. 24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작가는 “온전히 내게 집중했던 ‘청춘의 문장들’과 달리, ‘시절일기’는 부제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변인들과 함께한 경험을 내가 대신 기록한다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글들을 모았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번 산문집에 지난 10년 동안 쓴 일기를 모았다. 세월호 참사, 문화계 블랙리스트, 촛불시위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주요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김 작가는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 문학,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산문집의 저변에 짙게 깔린 정서는 상실감과 염세주의다. 이 같은 정서와 결합한 젊은 문장은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무겁게 읽힌다.
김 작가는 40대엔 좀처럼 소설을 쓰기 어려워 산문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 작가는 “소설을 쓰는 이유는 소설을 통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이 같은 기대를 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줬다”며 “비록 소설을 쓰지 못해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으므로,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일단 산문으로라도 시급하게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김 작가는 산문집에서 “우리가 두 번의 삶을 살진 못해도, 일기를 쓰면 두 번 살 수 있다”는 말로 일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 작가는 일기에 대해 “아무런 형식 없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낼 수 있는 자유로운 글”이라며 “일기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지난 일의 의미를 되새겨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만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기로 지난날의 괴로움을 기록하는 일이 더 괴롭진 않았을까. 김 작가는 “당시에 쓴 글을 산문집으로 엮으며 돌이켜보니 글을 썼기 때문에 오히려 힘든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다”며 “지난 글을 읽으며 우리가 모두 어둠을 뚫고 희미한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았고, 산문집에 담긴 글은 내가 그때 본 빛에 관한 이야기”라고 전했다.
김 작가는 소설가 중에서도 특히 산문을 많이 쓰는 작가로 꼽힌다. 소설 쓰기와 산문 쓰기의 차이를 묻자 김 작가는 “산문은 본질적으로 논픽션이기 때문에 시의성이 커서 읽는 데 상상력이 필요한 소설보다 더 빠르게 독자와 연결될 수 있다”며 “산문을 소설보다 낮은 잡문으로 여겼던 시절도 있었는데, 산문이 가진 힘을 아는 지금은 소설보다 산문을 쓰는 일이 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활자보다 영상의 힘이 점점 커지는 세상 속에서 문학의 효용성은 어디에 있을까. 김 작가는 타자의 고통을 애도하는 힘이 문학에 있다고 믿는다. 김 작가는 “사람은 본디 다른 사람에게 건너갈 수 없는 존재인데, 문학은 내 경험이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란 걸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힘이 있다”며 “문학을 읽음으로써 고립된 개인은 사회적으로 연결될 수 있고, 연결은 우리 사회를 진화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주장했다.
김 작가가 40대를 보내며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김 작가는 “인생은 길다”는 답을 내놓았다. 김 작가는 “‘청춘의 문장들’을 썼던 30대엔 이제 좋은 시절이 다 끝나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었다”고 고백하며 “이제 일흔이 돼도, 아흔이 돼도 삶에 관한 고민은 끝없이 이어지리란 걸 아는 만큼 나태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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