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북리뷰 면에 프란스 드 발의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에 관해 썼다.
오래전에 인상 깊은 기억이 있어서 나는 동물의 감정이 사람만큼 섬세하다고 믿고 있다.
이 책은 내 생각 이상으로 동물의 감정이 섬세하며 또 사회적인 동물임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밝힌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정말 잘 읽었다는 보람이 든 책이다.
문화일보 8월 2일자 26면 톱에 기사를 실었다.
-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
친구와 인사하고 웃는 침팬지
눈먼 동료 길 안내하는 코끼리
인간보다 단순하다는 편견 깨
서열 지키려 합종연횡 벌이고
중재자로 나서 평화 유도까지
인간 사회처럼 질서 지키기도
20여 년 전 일이다. 검은색 털을 가진 잡종견 ‘검둥이’가 식구로 들어왔다. ‘검둥이’는 잔반을 끓여 만든 사료를 주면 밥그릇이 반짝반짝해질 때까지 핥아 먹은 뒤 더 달라고 보챌 정도로 식탐이 강했다. 며칠 후 누런색 털을 가진 강아지 한 마리가 식구로 추가됐다. 놀랍게도 ‘검둥이’는 처음 본 강아지에게 사료를 양보했고, 강아지가 배를 채우고 물러나야 사료에 입을 댔다. ‘검둥이’의 이 같은 행동은 강아지가 다른 집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랐고, ‘검둥이’의 살은 빠졌다.
홀쭉해진 ‘검둥이’의 모습은 지금도 기자의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검둥이’는 감동과 함께 의문을 남겼다. 우리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고 여겨온 동물이 사실 인간처럼 다양한 감정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저자는 지난 2016년 5월 11일 유튜브에 공개된 한 동영상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영상엔 네덜란드 아른험 소재 뷔르허르스동물원에서 죽어가던 59세 침팬지 ‘마마’가 40년 동안 알고 지낸 생물학자 얀 판 호프와 작별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바닥에 누워 있던 ‘마마’는 오랜 친구를 알아보고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이어 ‘마마’는 호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뒤 긴 팔로 포옹하며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와 목 뒤쪽을 두드린다. 이는 침팬지가 새끼를 달래고 위로할 때 보이는 행동이다. ‘마마’의 행동은 마치 가족에게 자기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저자는 유인원과 인간의 행동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전제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는 동물의 감정이 인간보다 단순하다고 여겨온 우리의 생각을 하나하나 부순다. 암컷 침팬지가 새끼를 낳자, 다른 암컷 침팬지들이 기쁘다는 듯이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주인이 다리가 부러져 절뚝거리자 개도 주인을 따라 다리를 절뚝이고, 어떤 코끼리는 눈이 먼 동료 코끼리를 위해 맹도견 역할을 자청한다. 짝이 사라진 까마귀가 며칠 동안 울다가 지쳐서 죽는가 하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프레리들쥐는 짝을 잃은 뒤 의욕을 잃고 위험 앞에서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애도한다. 보노보는 먹이를 발견했을 때 동료가 보이면 혼자 먹을 수 있는데도 불러서 같이 먹는다. 이렇게 동물들은 종종 인간 이상으로 섬세한 감정을 보여준다.
동물들이 보여주는 강렬한 권력 의지와 치열한 정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의심하게 한다. 침팬지 무리에선 가장 힘이 센 ‘알파 수컷’이 최고 권력자지만, 경쟁자가 많아 함부로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알파 수컷’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자들과 합종연횡을 벌인다. 연합에 균열이 생기면 다른 경쟁자가 끼어들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다툼이 격화하면 중재자가 나서서 화해를 유도하기도 한다. 어지간한 정치 드라마 이상으로 긴장감이 넘친다. 이 같은 침팬지의 행동은 이들이 서로의 관계와 권력 구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동물이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는 우리의 생각도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침팬지는 사냥에 성공해 고기를 얻으면, 아무리 높은 서열을 가진 침팬지라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가 고기를 얻어먹는다. 인간이 갈등을 피하고자 미소를 짓듯이, 침팬지도 갈등 상황이 오면 이를 가능한 한 피하고자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침팬지 사회는 마치 법과 질서로 유지되는 인간 사회와 닮았다. 아프리카 회색앵무새는 기다렸다가 더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다면, 바로 앞에 먹이를 두고도 외면한 채 차분히 기다린다. 보노보의 사례는 극적이다. 보노보의 경우 서열이 높은 녀석과 낮은 녀석이 싸우다가 낮은 녀석이 다치면, 높은 녀석이 먼저 다가와 한참 동안 낮은 녀석의 상처를 핥아주며 위로한다. 이쯤이면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책은 여러 동물의 사례를 통해 인류가 가진 가장 강력한 진화의 무기가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동물의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올바로 파악하고, 더 나은 사회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이 인간처럼 높은 수준의 감정을 가졌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인간의 감정이 소중하듯이, 지구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동물의 감정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니 말이다. 468쪽, 1만95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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