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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애인과 헤어진 뒤… 노출사진 유포하는 사람의 심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12. 20.






리벤지 포르노 / 매튜 홀·제프 헌 지음, 조은경 옮김 / 현대지성

“최근에 헤어졌다. 내가 너무 통제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자를 보는 족족 꼬리 치지 않았다면 전화기를 체크한다거나 페이스북 계정을 닫으라는 말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녀가 나랑 끝냈으니 이걸 나 혼자 가지고 있는 게 의미가 없다.”

지난 2013년에 운영을 시작해 2018년에 문을 닫은 ‘마이엑스닷컴’(MyEx.com)에 한 남성이 전 여자친구의 노출 사진을 올리며 남긴 글이다. 이 사이트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인 ‘리벤지 포르노’ 공유로 악명을 떨쳤다. 이 남성은 자신이 전 여자친구를 지나치게 통제해왔음을 인정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듯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 남성뿐만 아니라 전 연인의 노출 사진을 올린 많은 이용자가 보여주는 태도 또한 이와 비슷하다.

이 책의 저자인 매튜 홀 영국 얼스터대 연구원과 제프 헌 영국 허더즈필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간의 차이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회적 현상을 연구해 왔다. 저자들은 ‘마이엑스닷컴’을 비롯해 각종 포르노 사이트,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 SNS 등에서 리벤지 포르노 콘텐츠와 함께 올린 글을 탐색해 5000여 사례를 수집했다. 저자들은 게시자가 올린 글을 분석해 가해자의 심리를 읽는다. 리벤지 포르노가 지금까지 주로 피해자 측면에서 논의돼 왔음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시각의 전환이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모두 피해자를 벌을 받아 마땅한 인물로 취급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타인에게 전하는 경고 메시지로 생각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피해자들의 안전하지 않은 성적 관행, 성적 문란함 등을 고발하는 게 타인에게도 이롭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견을 본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리하는 이유를 보복이란 비난을 피하기 위한 심리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저자들은 최근 들어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남성과 여성에서 벗어나 게이, 레즈비언을 아우르는 새로운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등장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이 제시한 그 어떤 방안보다도 가해자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피해자 구제보다 재발 방지가 훨씬 효율적이란 건 상식이니 말이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