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팩토리 / 조슈아 B.프리먼 지음, 이경남 옮김 /시공사
공장은 공기와 비슷한 존재다. 창밖을 오가는 수많은 자동차, 입고 있는 옷, 노트북 컴퓨터, 휴대전화…. 오늘날 세상은 공장이 만들어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공장이란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우리가 숨을 쉬는 동안 공기를 인식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굴뚝이 없는 ‘스마트 팩토리’가 등장하면서, 공장은 구시대의 산물로 여겨지고 있다. 공장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대량생산, 효율성 증가 등 경제적인 측면뿐일까. 노동운동과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는 공장이 지금도 우리가 일하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싸우는 방식 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의 섬유공장부터 21세기 대만의 폭스콘까지 시대별로 주요 대형 공장들을 돌아보며 공장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을 추적한다.
공장은 인류의 시간 개념을 바꿨다. 공장은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공장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계급을 탄생시켰고, 두 계급은 치열하게 줄다리기하며 인류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조차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대량생산체제를 정착시키려 시도했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대중의 일상에 깊게 파고든 공장은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19세기 영국의 시인 로버트 사우디는 스코틀랜드 뉴래너크 공장을 로마의 유적에 비유했다. 이목이 쏠리면서 공장의 어두운 면도 부각됐다. 찰리 채플린이 1936년에 내놓은 영화로 공장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모던 타임스’는 그 대표작이다.
공장 덕분에 인류는 질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 변화가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왔을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위탁 생산하는 폭스콘에선 2010년대 중반 18명이 자살을 기도하고 1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첨단 제품을 만들면서도 가혹한 노동환경에 견디다 못해 목숨을 던졌다. 급등한 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대형 공장들은 이제 제3세계로 터를 옮겨 현지의 노동력과 기술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미래의 공장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미래를 생산할까. 긍정적인 미래는 현재를 파악하는 데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 책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512쪽, 2만60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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