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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일상의 소중함과 관계의 귀중함 놓치지 마세요”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11. 18.

성석제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실없는 웃음부터 새어 나온다.

능청스럽다는 표현이 성 작가보다 잘 어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래서 더욱 날카롭다.

무장해제 한 틈을 타 번뜩이는 무언가가 훅치고 들어오니 말이다.

성 작가가 이번에 새로 출간한 산문집은 전작보다 능청스러움이 덜 하다.

대신 전작보다 깊은 시선이 느껴진다.

이렇든 저렇든 성 작가의 글을 늘 즐겁다.


문화일보 11월 18일자 18면 톱에 인터뷰를 실었다.


성석제 작가는 새로운 산문집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를 통해 소설가이자 자연인으로서의 면모를 진솔하게 드러내며 인생의 다양한 면을 들여다본다. 문학동네 제공

- 산문집 ‘근데 사실 조금은…’ 낸 소설가 성석제
처음 접한 문학 작품의 ‘경이’
소설가로 거듭나는 과정 담아
SNS 등 급변하는 시대속에서
훼손되는 언어에 ‘깊은 우려’
느리고 외로운 여행이었지만
무언가 느꼈다면 ‘진정한 여행’


소설가인 성석제 작가의 문장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유발한다. 풍자와 해학, 익살이 넘치는 성 작가의 능청스러운 입담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하는 독자라도 무장해제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성 작가의 문장은 주제를 가리지 않는 산문에서 소설 이상으로 빛을 발한다. 독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과 경험을 재치 있게 다루면서도 그 안에 날카로움이 엿보이기 때문일 테다.

성 작가가 새로운 산문집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문학동네)를 내놓았다. 한동안 사진과 음식에 관심을 기울였던 성 작가는 이번 산문집에 인생의 다양한 면을 들여다본 글들을 엮었다. 성 작가는 길어서 눈에 띄는 제목을 산문집에 단 이유에 대해 “우리가 평소에 별 의미 없이 버릇이나 유행어처럼 끼워 넣는 말도 위치·발화자·청자·분위기·시대 등 수많은 함수·변수와 관련해 특별한 관계와 의미의 자성을 띠게 돼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며 “그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의 소중함과 관계의 귀중함을 더 강조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문학 작품을 접했을 때 느낀 경이감과 소설가로 거듭나는 과정, 작가로 살아오면서 정리한 문학에 관한 사유, 삶에서 만난 기쁨·슬픔·애정·그리움이 담긴 순간들, 파괴되는 자연과 훼손되는 언어를 향한 우려, 여행을 통해 세상을 둘러보며 얻은 깨달음 등. 이번 산문집에는 성 작가의 소설가이자 자연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다양한 주제의 글이 4부에 걸쳐 담겼다. 능청스러운 입담의 비중은 줄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더욱 깊어졌다.

성 작가는 산문집 도입부에 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으로 만화와 고전을 꼽아 눈길을 끈다. 성 작가는 “만화는 순전히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진수를 우연히 맛을 봤고, 고전은 조금은 강제된 독서였다”며 “어느 것이든 내게 의미 있고 유용한, 그야말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독서경험을 안겨 줬다”고 말했다.

음식에 관해 맛깔나는 글을 써온 성 작가는 이번 산문집에도 순두부찌개, 누룽지 등 음식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음식이 작품 세계에 미친 영향에 관해 성 작가는 “음식은 소설에서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좁히고 낯가림을 모면하게 하며 당대성을 직관적으로 공유하게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며 “식도락은 이제 과거 특권층의 호사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한 징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 작가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변화하는 언어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성 작가는 SNS의 영향력 확산과 부정확하게 쓰이는 공공언어에 주목한다. 성 작가는 “SNS는 압도적이고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한동안 우리의 의식·삶·가치판단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인쇄 매체가 오랜 세월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제국을 구축했다가 스러져가고 있듯이 SNS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유보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아울러 성 작가는 공공언어에 대해선 “공공의 문장은 ‘국민의 언어’로 쓰여야 한다”며 “특정한 계층·직업·세대에 속한 것이 아닌 보통·보편·정확성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행을 주제로 다룬 글에선 “속도가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는 표현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성 작가는 여행을 “취재, 작품과 작품 사이의 필수적인 여백”이라고 표현했다.

가장 이상적인 여행은 어떤 여행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성 작가는 “걷고 머물고 쉬고, 또 걷다가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내리고, 텐트에서 자거나 외딴 민가에 신세를 지고 머물고 떠나는 형태의 여행”이라며 “느리고 외롭고 불편하겠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자신이 달라져 있음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성 작가는 내년 하반기에 새로운 소설을 내놓을 계획이다. 책 외에도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매체가 많아진 세상이지만, 성 작가는 책이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매체라고 바라봤다.

성 작가는 “정보와 경험을 해석하고 담아두는 인체기관인 뇌는 문장·언어·인쇄 매체에 최적화돼 있다”며 “다른 매체에 최적화되는 미래가 언젠가는 오겠지만, 아직은 우리가 잘 알고 지금까지 써온 도구를 사용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