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환상자전거길은 총 234km 길이의 코스다.
첫째 날에 약 70km, 둘째 날에 약 100km를 달렸다.
남은 코스는 60km에 불과해 여유로웠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이틀에 걸쳐 나눠 달리기로 했다.
자전거를 대여간 기간이 4일이란 이유도 있지만, 함덕 서우봉해변에 하루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지만, 내 기억 속에는 함덕 서우봉해변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성산일출봉에서 함덕 서우봉해변까지 거리는 약 40km.
마실 다니듯 페달을 밟아도 되는 짧은 거리다.
성산일출봉 인증센터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전날 구름에 덮여 흐릿했던 윤곽이 이제야 보인다.
이날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이 없었다.
살짝 흐린 날씨였다.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날씨다.
성산일출봉 인증센터에서 가까운 '오조해녀의 집'에서 전복죽을 아침식사로 먹었다.
5년 전에 준면 씨와 와서 실컷 전복을 먹었던 집이다.
전복죽 맛집으로 소문난 집다운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제주 환상자전거길에서 가장 훌륭했던 구간을 꼽으라면, 나는 성산일출봉과 김녕해수욕장 사이의 구간을 꼽겠다.
업힐이 거의 없어 페달을 밟기 편안하고, 대부분의 구간이 해변과 겹친다.
공도와 겹치는 구간이 거의 없어 조용하고 바다를 감상하기에 좋았다.
이미 질 때가 지난 찔레꽃이 구간 곳곳에 피어있었다.
반가웠다.
날씨가 맑아지니 푸른 바다의 빛깔이 더욱 선명해진다.
특히 하도 부근 바다의 빛깔은 마치 옥빛을 닮아 눈길을 끌었다
셋째 날에도 만난 마님.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도 하지 않으신다.
평대리 해변 부근에서 마주친 로봇스퀘어.
로봇 박물관인 듯해 흥미로워 들러볼까 했지만, 코로나19 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아 지나쳤다.
김녕해수욕장으로 가는 자전거길 내내 이런 풍경이 계속 펼쳐진다.
경주하듯 빨리 지나치기에 아까운 길이다.
제주도 현무암을 쌓아 만든 돌담이 코스 곳곳에 조성돼 있다.
자전거에서 내려 돌담을 자세히 살펴보니 곳곳에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
툭 치면 넘어갈 것 같은 돌담이 거센 해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이 구멍 때문이었구나...
제주도 해안 곳곳에는 풍력발전 설비가 세워져 있다.
동해안 자전거길을 달리다가 영덕에서 마주쳤던 풍력발전단지처럼 이런 시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다.
자전거에서 내려 한창동안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월정리로 들어서자 유독 사람이 많이 모인 해변이 보였다.
사람들이 투명한 배를 타고 있어 신기했다.
알고 보니 투명카약이라고 이 동네의 명물이란다.
방송도 꽤 탄 모양이다.
알짜 일자리인 공공기관이 이번 풍경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니.
아마도 이곳은 제주 지역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일 것이다.
김녕해수욕장 인증센터에 도착.
수첩에 도장을 찍을 곳이 단 한 곳 남았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어서 해변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지체 없이 함덕 서우봉해변으로 향하려다가...
배가 고파서 길에서 눈에 띈 식당으로 들어가 보말칼국수를 시켜 먹었다.
아...
맛이 영 별로였다.
5년 전 모슬포항 옥돔식당에서 먹었던 보말칼국수는 정말 환상의 맛이었는데...
함덕 서우봉해변으로 가는 길은 별 특징이 없는 길이었다.
공도와 겹치는 구간도 꽤 있었고.
별 생각 없이 페달을 밟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함덕 해수욕장으로 진입하는 길에 다다른다.
함덕 서우봉해변에 도착.
용두암까지 20km를 더 가야 환상 자전거길 종주가 끝나지만, 이제 더 이상 수첩에는 도장을 찍을 공간이 없다.
함덕 서우봉해변은 제주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해변이다.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지만, 서해안의 대천해수욕장이나 남해안의 해운대해수욕장과 비슷한 포지션이려나?
제주공항에서 가까운데다, 해변 풍경이 확실히 다른 해변보다 아름답다.
많이 찾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이날 이 곳에 숙소를 잡고 하룻밤을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섰다.
이날 정오까지 자전거를 반납해야 하는 터라 서둘렀다.
날이 많이 흐렸다.
어제 선명한 윤곽을 드러냈던 서우봉은 이날 아침 구름에 덮여 있었다.
20여 km만 달리면 제주 환상자전거길 종주도 끝이다.
올해 처음으로 열매를 맺은 멍석딸기를 만났다.
열매 하나를 따서 먹어봤다.
시큼했다.
여름이다.
함덕 서우봉해변에서 용두암으로 가는 길의 초반에는 해변과 접하는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공도와 합류한다.
제주 항일 운동의 상징인 독립만세운동기념탑을 지나면, 제주 시내와 가까워지기 때문인지 차량 통행량이 많아 지는 게 느껴진다.
그만큼 조심해서 페달을 밟아야 한다.
제주에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해주는 삼양동 구석기 유적.
다시 용두암으로 향하는 구간에는 지역민의 주거공간과 인접한 길이 많았다.
제주 시내의 옛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제주의 명문고인 오현고를 지나
제주대 교육대학이 자리 잡은 사라캠퍼스를 지나면
이 코스의 마지막 난관(?)인 사라공원이 나온다.
나름 업힐이지만, 그리고 어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길이다.
숲이 우거져 있어 공기도 상쾌한 장소였다.
사라공원에서 내려다 본 제주항 국제여객터미널.
국제여객터미널이 보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다?
이제 다 왔다는 의미다.
올해 처음 마주친 도라지꽃.
매년 이맘때 늘 보는 꽃이지만, 참 아름다운 색깔이다.
용두암을 알리는 표지가 보인다.
페달을 밟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제주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탑동 해변을 지나면 곧!
내가 처음에 출발했던 용두암 인증센터가 지척이다.
제주 환상자전거길 종주 완료 및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달성!
나는 3만6436번째로 제주 환상자전거길 종주를 완료하고, 1만6806번째로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라이더가 됐다.
이 짓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전국의 모든 자전거길을 달렸다.
용두암 인증센터에서 종주 인증을 받은 뒤 바로 자전거 대여점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반납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반납했다.
4일간 무사히 내 발이 돼 줘 고맙다.
자전거대여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맛집 우진해장국에 들러 고사리해장국을 점심식사로 먹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난 터라, 가게 바깥에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이 많았다.
나도 1시간 가까이 기다려서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5년 전에는 이 정도로 기다리진 않았는데 말이다.
고사리해장국을 먹은 뒤 동문시장에 들러 딱새우회와 갈치회를 구입했다.
이날 나는 탑동해변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서 홀로 바다를 보며 환상자전거길 종주와 그랜드슬램을 자축하고 싶었다.
흐린 바다이지만, 오션뷰 앞에서 마시는 소주와 회는 꿀맛이었다.
자전거 국토종주 그랜드슬램의 마지막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이제 더 이상 인증에 연연하지 않고 자전거길을 달릴 수 있게 됐다.
다음에는 어느 자전거길을 달려볼까.
일단 집에서 가까운 한강 자전거길을 다시 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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