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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침묵주의보' 3쇄를 찍었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0. 7. 23.

책 대부분의 운명은 출간 1~2주 이내에 결정된다.
그때 주목받지 못하고 팔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별 볼 일 없는 책으로 남는다.

'침묵주의보'는 출간 초기에 주목을 받지도, 많이 팔리지도 않은 작품이었다.
홍보도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내게 관심을 보이는 매체도 없었다.
서점 매대에서 '침묵주의보'는 빠르게 사라졌다.

'도화촌기행' 이후 퇴사까지 감행하며 7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이었는데, 기대와 달리 1쇄도 팔지 못한 그저 그런 책으로 묻히는 각이 보여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더 소설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성비 떨어지는 이 비효율적인 작업에 매달리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그랬던 책이 출간된 지 거의 1년이 지난 후 도서보급사업 문학나눔에 선정돼 2쇄를 찍었다.
1쇄만 다 팔아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라 덕분에 느닷없이 소원을 이뤘다.
그로부터 반년이 흐른 후 드라마 판권이 팔렸다.
다시 반년 후 나주에서 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또 8달이 더 흐른 후, 내 손에 3쇄가 들려 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방영될 예정이란 문구를 담은 띠지와 함께. 

수십 쇄를 자랑하는 베스트셀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침묵주의보'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팔렸다.
이렇게 천천히 3쇄까지 팔린 책은 흔치 않을 것이다.
준면 씨는 이 책이 나와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묻히지 않고 꾸역꾸역 여기까지 걸어온 책에 애틋한 마음이 든다.

 

 


3쇄를 손에 들고 보니, 내가 무언가를 더 써도 되는 사람이란 자신감이 든다.
얼마 전에 집필을 마친 새 장편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원고도 여기저기서 계속 까이고 있지만, 요즘에는 "깐 걸 나중에 후회할걸?" 하며 피식 웃기도 한다.
'도화촌기행'과 '침묵주의보'도 여기저기서 몇 년 동안 수십번 까였는데 이 정도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