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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이소영 저 <식물의 책>(책읽는수요일)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2. 19.

 


내가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따로 찾아 읽었던 유일한 칼럼은 서울신문에 연재된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이다.
나도 몇 년 전 신문 지면에 2년간 매주 '식물왕'이란 타이틀로 꽃을 주제로 다룬 칼럼을 연재했던 터라 이 칼럼을 관심 있게 읽었었다.
책이 출간된 지 1년이 넘었는데, 게으르게도 이제야 펼쳤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보여 잘 안다고 여겨왔지만, 실은 잘 알지는 못하는 식물을 다룬다.
이 책의 매력은 페이지 곳곳에 실린 다양한 식물세밀화다.

모두 작가가 직접 그린 작품이다.
처음에 나는 굳이 식물을 세밀화로 그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었었다.
나는 오랫동안 들꽃 사진을 찍어왔다.
그림보다 사진이 더 생생하게 식물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착각이었다.
일례로 이 책은 향나무 여러 종을 세밀화로 하나하나 구별해 보여주는데, 만약 사진으로 이 나무들을 봤다면 다른 점을 구별하기가 몹시 어려웠을 테다.

야생에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식물이 많다. 
씀바귀와 고들빼기 꽃 사진을 동시에 봐도 이를 구별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난이도를 좀 올려서 양지꽃과 뱀딸기꽃을 직접 눈앞에서 봐도 구별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세밀화는 이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사진보다 훨씬 생생하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됐다.
도시의 개나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 상수리나무의 유래, 주목이 암꽃과 수꽃을 따로 피운다는 사실, 동백꽃 수분을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한다는 사실 등은 이 책을 통해 내가 새로 얻은 지식이다.
봄이면 지천에 널리 솟아나는 쑥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이 책에 실린 세밀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부끄럽게도 포도꽃은 이번에 세밀화를 통해 처음으로 접했다.
언젠가 내가 꼭 쓰고 싶은 책이 들꽃에 관한 책인데, 이 책은 내가 '식물왕'이라고 뻐기려면 아직 갈 길이 멀음을 일깨워줬다.

이 책에도 언급돼 있듯이, 열강들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식물을 세밀화로 기록해왔다. 
자국에서 자라는 식물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봄이면 거리를 향으로 채우는 미스킴라일락, 전 세계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악한 구상나무 등 우리 땅이 원산지인데도 우리 것이라고 큰소리치지 못하는 식물이 적지 않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식물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우리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페이지 곳곳에서 느껴진다.
작가의 사려 깊은 따뜻한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 있는 메시지가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