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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마스타니 후미오 저 <아함경>(현암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2. 26.

 


오랜만에 이 책을 꺼내 다시 페이지를 펼쳤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머니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데 이어, 오랜 첫사랑마저 내 곁을 떠나고, 아무것도 이룰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던 20대 말의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렸다.
당시 나는 왜 내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 연이어 찾아오는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싶었다.

휴학을 밥 먹듯이 해 나이 서른을 앞두고도 대학에 적을 두고 있었던 나는 졸업 학기 수업을 대부분 인문대에서 수강했다. 
그때 수강한 과목 중 하나가 불교와 관련 교양 수업이었고, 이 책은 그때 만난 책이다.

<아함경>은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이다.
저자는 동명의 불교 경전의 교리를 알기 쉽게 풀이해 독자의 이해를 보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붓다는 대단히 논리적이면서도 명쾌한 인물이다.
초기 불교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책 안의 붓다는 극락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내세를 확신하지도 않는다.
그저 현실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보편적인 논리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 책의 핵심은 연기론에 관한 설명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하므로 일체는 무상하다.
무상한 것을 향한 집착이 분노와 무지, 어리석음을 불러오고 삶에 고통을 준다.
그렇다고 붓다의 가르침을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므로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는 허무주의로 오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채찍질에 가까운 가르침이다.

연기론에 따르면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저 홀로 독립한 존재란 없다.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마음을 다스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인과의 법칙을 다루는 연기론의 가르침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말처럼 지극히 당연하게 들린다.
그 당연한 가르침이 그때 내게 큰 위로가 됐다.
지난 일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줬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일단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게 했고, 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그때 쓴 소설이 '아함경'을 내가 소화한 대로 풀어낸 <도화촌기행>이다.
이 소설은 그로부터 몇 년 후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내 데뷔작이 됐다.

최근 들어 마음이 심란해졌다.
얼마 전에 출간한 새 장편소설 <젠가>의 반응이 내 기대보다 많이 미지근했기 때문이다.
나는 <젠가>가 어떤 독자가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소설이라고 자신했다.
쑥스럽지만 내가 읽어도 재미있는 내 소설은 <젠가>가 처음이었다.
독자 리뷰를 살펴봐도 대부분 호불호가 없는 호평인데, 판매 속도는 그에 미치지 못해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 책을 오랜만에 다시 펼치니 심란한 마음이 조금 풀렸고, 다음 작품 집필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혹시 지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미래에 고민이 많다면 <아함경>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