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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애로송’ 정희라 “내 노래가 야하다고요? 억지로 감추는 게 더 야한 것 아닌가요?”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2. 8. 21.

4년 전인가 5년 전인가 어느날 나는 인터넷을 통해 애로송을 만났다.

그날 이후 난 '고속도로'라는 새로운 언더그라운드 음악세계를 알게 됐다.

촌스러운 전자음 위에 실린 간드러진 목소리가 주는 중독성은 대단했다.

내가 직접 고속도로에서 구입해 뿌린 애로송 앨범만도 부지기수다.

그 '전설'의 주인공을 어제 직접 만났다. 감격했다.

이 분 사진보다 실물이 낫다. 저 나이에 저 정도 몸매 유지하시는 분 드물다.

 

 

 

 

 

 

 

‘애로송’ 정희라 “내 노래가 야하다고요? 억지로 감추는 게 더 야한 것 아닌가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조회수 4000만 건을 바라보던 18일 밤. 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 자리를 ‘정희라’라는 검색어가 점령했다. 진원지는 동시간대에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 Mnet ‘슈퍼스타K4(이하 ‘슈스케’)’였다. 검색어와 동명인 50대 여성이 제목도 희한한 ‘소시지 타령’이라는 노래를 무반주에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불러 젖혔다. “번데기도 아닌 것이 XXX XX~ 젖소도 아닌 것이 XXX XXX~” 소절마다 가사를 가리는 효과음이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으로 나선 가수 이승철과 이하늘, 백지영은 포복절도하며 심사를 좀처럼 이어가지 못했다. 암암리에 입소문으로 떠돌던 ‘애로송’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는 당당히 예선을 통과하며 슈퍼위크에 진출했다.

“2005년까지 팔린 앨범 숫자만 100만 장이 넘어요. 그 이후엔 따로 집계를 안 해서 얼마나 팔렸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더 많이 팔렸겠죠?”

정희라(51)는 ‘밀리언셀러’ 가수다. 가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판매고이지만 시중에서 정희라의 앨범을 구경했다는 사람은 드물다. 정희라의 앨범은 대부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만 알고 듣는 사람들만 듣는 ‘고속도로 메들리’. 2001년 1집과 2집 동시발매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데뷔한 정희라는 ‘애로송’ㆍ‘노골송’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왔다. 고속도로라는 독특한 장소에 구축된 이 독특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세계에서 정희라는 이효리 뺨치는 슈퍼스타다. 정희라의 앨범은 장시간 운전에 따른 피로와 졸음을 웃음으로 쫓는 특효약으로 10여 년째 각광받고 있다. 촌스러운 재킷과 허술해 보이는 만듦새 때문에 앨범 구입을 꺼리던 사람들도 일단 한 번 구입하면 두 번 구입하게 된다는 ‘애로송’의 매력은 무엇일까?

 



 


▶ 노골적인 제목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해학= 정희라는 자신의 노래를 ‘에로송’이 아니라 ‘애로송’이라고 강조한다. ‘애로’는 한자로 ‘사랑 애(愛)’와 ‘길 로(路)’를 의미한단다. ‘비아그라 타령’ㆍ‘묻지마 관광’ 등 직설적인 제목에 가려 간과하기 쉽지만 정희라의 노래 가사는 생각보다 덜 야하다. 사실 정희라의 노래 가사는 노골적이라는 표현보다 해학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터널만 들어가 봐라 시동이 꺼져버리는 걸. 차만 크면 무얼 한다냐’는 ‘에쿠스와 라보’의 가사가 주는 해학과 하룻밤 내어주기를 거부한 야박한 훈장에게 ‘선생내불알(先生來不謁/선생은 나와서 쳐다보지도 않네)’이라고 일갈한 김삿갓의 해학의 차이를 구별하긴 어렵다. 그는 “제목만 보고 B급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마음이 더 야한 것”이라며 “‘애로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부분도 많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렇다. “눈 맞으면 때도 밥도 못해예. 냉수 한 잔 마시고 속 차려라 깍쟁이들아”라는 ‘묻지마 관광’의 후렴구는 제목을 거스르는 통쾌한 반전이다. 

▶ 대리만족 느끼는 동년배 여성팬 많아= ‘여성부가 포기한 가수’.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정희라와 연관 검색어로 뜨는 키워드 중 하나다. 물론 정말로 여성부가 나서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로송’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기사가 오르면 ‘애로송’보다 더 뜨거운 ‘악플’이 줄을 잇는다. 정희라는 ‘애로송’ 앨범 발매 이전에 기성곡을 부르던 메들리 가수였다. 앨범 발매 의뢰를 받았을 당시 정희라의 가족들은 반대했다. 정희라 역시 당시로선 파격적인 가사 앞에서 망설였다. 그러나 이전에 없던 장르로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았다. ‘애로송’은 정희라의 용기에서 나온 산물인 셈이다. 정희라는 “남성 팬들뿐만 아니라 여성 팬들도 속 시원하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전한다”며 “자신들이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 노래로 풀어주는 것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여성 팬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애로송’ 틀지 않으면 공중파 출연도 거부하는 당당한 B급= 정희라의 애로송은 현재 공중파에서 들을 수 없다. 공중파 출연 섭외를 못 받아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로송’을 불러선 안 된다는 단서가 달렸다. 정희라는 미련 없이 포기했다. 애로송을 부르지 않는 정희라는 의미 없다는 것이 이유다. ‘슈스케’ 출연 이후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천지개벽이 없는 한 ‘애로송’을 원곡 그대로 공중파에서 듣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음반 시장이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재편된 이후 고속도로 시장의 규모도 줄어들어 판매고도 예전 같지 않다. 정희라는 최근 ‘누구세요’라는 트로트 곡을 발표했다. 구수한 사투리가 감칠맛 나게 다가오는 곡이지만 ‘애로송’과 비교해 평범하다. ‘애로송’만으론 출연할 수 있는 행사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고육지책이다. 그렇다고 정희라가 ‘애로송’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정희라는 “‘누구세요’가 성공한다면 그동안 발표한 ‘애로송’들도 더 많이 알려질 것 아니냐”며 “앞으로도 ‘애로송’을 오랫동안 부르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정진영 기자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