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도 없다.
그러나 이들은 거리 공연만으로 지금의 자리를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들의 자그마한 성공의 비결엔 철저한 프로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결코 거리의 예술을 대가를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란 식으로 얼버무리지 않았다.
철저히 좋은 음악을 만들려 노력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려 노력했다.
그리고 당당히 대가를 요구했다. 생각보다 이들의 생각에 동의해준 대중이 많았다.
어쩌면..
인디레이블과 메이저레이블의 행보가 비슷해지고 인디음악과 메이저음악의 경계선이 희미해진 요즘, 이들이야 말로 진짜 인디 뮤지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길거리에서 오가는 대중을 상대로 거리 공연을 벌이는 아티스트들은 많았다. 그러나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받는 버스킹(Busking)은 대중에게도 아티스트들에게도 낯설었다. 대중은 거리에 흔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에 대가를 지불하는 일을 난감해했고, 아티스트들은 ‘신성한’ 예술을 펼치며 대가를 요구하는 행위를 겸연쩍게 여겼다. 지난 200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좋아서하는밴드는 ‘예술은 배고픈 것’이란 이상한 공식이 도식화된 이 땅 위에서 성공적으로 버스킹을 개척한 선구자였다. 대학가요제 금상 출신 조준호(퍼커션), 그의 대학동기인 손현(기타)을 중심으로 백가영(베이스), 안복진(아코디언) 등 네 명의 멤버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 5년간 버스킹으로 어쿠스틱 음악을 연주하며 전국의 거리를 누볐다. 이들이 데뷔 후 첫 번째 정규 앨범 ‘우리가 계절이라면’을 발표하며 더 많은 대중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준호는 “거리 공연에 집중하느라 정규앨범을 낼 생각은 없었는데 그사이 쌓인 자작곡이 많았다”며 “멤버 모두 싱어송라이터인만큼 버스킹으로 들려주지 못한 음악을 앨범에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뒤늦은 앨범 발매 배경을 전했다.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독특한 밴드 이름은 이름 없이 거리 공연을 벌이던 이들을 아끼던 팬들이 붙여줬다. 2009년에 발매된 첫 번째 미니앨범 ‘신문배달’도 홍대의 한 카페가 녹음장소를 제공하고 팬들이 앨범 제작비를 모아줬다. 그 밴드에 그 팬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미니앨범은 버스킹만으로 2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침체된 음반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 같은 돌풍의 중심엔 좋은 음악이 있었다. 생활에 밀착한 소박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를 자극적이지 않은 선율에 담아낸 이들의 음악은 입소문만으로 생명력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거리 공연의 매력에 대해 백가영은 “관객의 반응이 바로 피부로 전해진다”며 “우리가 공연을 잘하고 있는가는 관객들의 표정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다. 관객들의 반응은 정직하다”고 설명했다. 안복진은 “버스킹이 공연장에서 벌이는 단독 콘서트보다 길어질 때도 있다”며 “거리에서 불특정다수와 선약 없이 만나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버스킹의 소박함을 세련시킨 곡들로 알찬 이들의 정규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인디음악 전문차트인 인디고 차트에서 1위(2월 상반기)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잔잔한 사운드가 그저 그러려니 들리다가도 별안간 따뜻하게 귓가로 스며든다. 담백한 사운드는 가사를 선명하게 만든다. 먼저 연인에게 손 내밀지 못하는 소심함을 “뽀뽀만 하기에도 모자랄 시간에”라고 발랄하게 노래하는 ‘뽀뽀’,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졸린 너의 머리는 나의 어깨에 꼭 맞았지”라며 연인의 관계를 퍼즐에 빗댄 ‘퍼즐조각’, 현실의 궁상맞음을 “가스비에 내 맘은 타 들어가도 오늘은 네가 와 줬으니 너를 위해서 보일러를 켜겠어”라며 유머로 풀어내는 ‘보일러야 돌아라’, 헤어진 연인을 향한 흐려지는 기억을 “내 눈은 0.4구나 내 맘은 0.4구나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넌 날 자꾸 괴롭혀”라며 애잔하게 떨어진 시력으로 비유하는 ‘0.4’ 등 편안한 선율에 실린 일상에 기댄 가사는 내 이야기 같아 우습고 아련하다.
좋아서하는밴드가 거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이들은 놀랍도록 확고한 직업의식과 음악적 철학을 드러냈다. 이들은 먼저 거리 공연을 ‘봉사’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통념에 일침을 놓았다. 조준호는 “공연장을 빌려 노래를 부르면 남는 수입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공연장보다 거리 공연 수입이 더 좋기 때문에 거리에 선다”고 강조했다. 손현은 “대중음악은 대중을 만족시켜 수입을 얻기 위해 시장에 내놓는 상품이고 우린 대중음악을 하는 밴드”라며 “우린 밴드를 음악을 만들어 파는 하나의 작은 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속내를 말했다. 백가영은 “우린 좋아서 밴드를 하지만 배고픈 밴드를 하고 싶진 않다”며 “배고팠으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좋아서하는밴드는 정규 앨범 발표 기념 전국 투어를 앞두고 있다. 오는 17일 대전 충남대 백마홀을 시작으로 23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30일 서울 KT&G 상상아트홀까지 투어를 이어간다. 번듯한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투어이지만, 투어 이후에도 이들의 거리 공연은 계속될 예정이다. 이들은 “가늘고 길게 음악을 하는 것 목표”라고 웃어 보이며 “거창한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싶진 않다.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좋아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123@heraldcorp.com
[사진제공=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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