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거지는 음악 그 자체에 가치를 두는 일반적인 포크 뮤지션과는 달랐다.
특히 김거지가 풀어내는 사운드와 기타 톤에 대한 집착과 해박한 지식은 내가 지금 기타리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 유쾌한 태도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가요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주제이자 숙제인 ‘사랑’. 숙제는 결국 상투적인 주제 ‘사랑’을 얼마나 상투적이지 않게 표현해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모범답안은 없지만 풀이과정은 있다. 수많은 풀이과정 중 하나인 가사의 변주는 가장 손쉽고 또 어려운 접근 방법이기도 하다. 진지함과 유치함의 균형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 김거지(본명 김정균)는 시를 닮은 생활밀착형 가사란 변화구를 던짐으로써 승부를 걸었다. 뮤지션 지망생들의 꿈의 무대인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이란 김거지의 타이틀이 다시금 눈에 들어와 앨범 속지를 살피게 만든다. 여기에 가사에 최적화된 감성을 담은 보컬과 허술한 듯 단단한 음악이 불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미니앨범 ‘구두쇠’를 발표한 김거지를 서울 논현동 소속사 연습실에서 만나 맥주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앨범의 제목을 ‘구두쇠’로 정한 이유에 대해 김거지는 “어떤 직장인 친구는 바다로 떠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다고, 어떤 백수 친구는 돈이 없어서 바다로 못 떠난다고 내게 하소연하더라”며 “쉽게 마음대로 어디론가 떠날 수조차 없이 청춘을 아껴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앨범엔 타이틀곡 ‘구두쇠’를 비롯해 목욕하며 떼를 밀어내는 모습을 사랑과 이별로 은유한 ‘떼’, 떠나간 사랑을 향한 미련을 목이 늘어난 커플티를 버릴 수 없는 심정에 빗댄 ‘커플티’, 몸이 아프다며 출근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아프니 거짓말이 아니라는 핑계를 재치 있게 담아낸 ‘거짓말’, 고속버스 창문에 낀 성에로 남녀 간의 사랑의 온도차를 표현한 ‘성에’ 등 5곡이 실려 있다. 특히 ‘거짓말’엔 김건모의 히트곡 ‘핑계’의 일부가 샘플링으로 삽입돼 쏠쏠한 잔재미를 준다.
편곡이 담백한 만큼 청자의 귀에 들리는 가사는 선명하다. “니가 너무 따끔거려 못 참겠어. 이젠 눈물 대신 너를 밀어내”라는 ‘때’, “추억은 버릴 수가 없어 남루한 잠옷이 되어가고 있네”라는 ‘커플티’, “작은 청춘도 쓰지 못하는 너는 구두쇠가 아닐런지”라는 ‘구두쇠’ 등과 같은 가사는 시어와 일상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청자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김거지는 “나는 경험한 만큼밖에 가사를 쓰지 못하고 그것이 나의 한계이기 때문에 작업이 더딘 편”이라며 “나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내 안에서 소화해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김거지의 대답은 음악이란 결국 진실을 담아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처럼 들렸다.
김거지는 살면서 가장 많이 받았을 질문인 예명을 ‘거지’로 지은 이유에 대해 “음악을 시작할 때 기타를 구입할 돈이 없기도 했거니와, 기타를 구입하기 위해 공사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내 모습을 보고 거지같다더라”며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예명을 돌이키기 어렵게 돼버렸다”고 웃어 보였다.
김거지는 자신의 깁슨(Gibson) 어쿠스틱 기타로 몇 소절을 연주하며 “레니 크레비츠(Lenny Kravitz)의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록 기타리스트를 방불케 하는 김거지의 악기와 톤에 대한 관심은 사운드의 질감보다 음악 그 자체를 강조하는 일반적인 포크 뮤지션들과는 다른 조금 독특한 태도였다. 김거지는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나 에드 시런(Ed Sheeran) 같은 외국 포크 뮤지션들의 앨범을 들어보면 사소한 톤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도 정돈된 사운드를 느낄 수 있다”며 “요즘도 수시로 악기를 바꾸고 기타의 픽업을 교체하며 표현하고 싶은 감성에 가장 가까운 톤을 잡아내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좋은 음악만큼이나 좋은 사운드를 앨범에 담아내고 싶다”고 소망했다.
김거지의 주된 무대는 늘 거리였다. 앨범 작업 와중에도 그는 1주일에 2~3번을 버스킹(거리 공연)에 나섰다. ‘구두쇠’ 뮤직비디오의 콘셉트도 버스킹일 정도다. 덕분에 앨범 작업은 계속 늦어졌다. 그는 “앞으로도 큰 공연장보다는 한강다리 밑이나 부암동 등에서 예고 없는 버스킹으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고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만은 거지처럼 가난해지지 않기를 빈다”고 바람을 전했다.
123@heraldcorp.com
'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 > 음악 및 뮤지션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씨엘 “난, 예쁜 것보다 멋진 것이 좋다” (0) | 2013.06.04 |
---|---|
조용필ㆍ이문세, 두 노장(老將)이 보여준 한국 콘서트의 미래 (0) | 2013.06.03 |
(인터뷰) 브로큰 발렌타인 “블록버스터처럼 대중성ㆍ작품성 조화 이룬 록 꿈꿔” (0) | 2013.06.01 |
조용필 ‘걷고 싶다’ 뮤직비디오 공식 공개 (0) | 2013.05.31 |
(인터뷰) 일상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과 단단한 음악…이진우, 데뷔앨범 ‘주변인’ 발매 (0) | 2013.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