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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보령… 불편하고 낯설지만 매혹적인 음악 세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4. 5.

음악 하나만 보면 한국 뮤지션 중 가장 세계화된 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이 아닐까?

좀 쎈 언니 같지만 만나면 웃음 많고 좋은 누님.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싱어송라이터 황보령은 홍대 인디 신에 등장한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늘 불편한 존재였다. 어쿠스틱 팝, 모던록이 주류를 이루는 인디 신에서 황보령은 단 한 번도 예상 가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남들이 예쁜 목소리로 달콤한 멜로디를 들려줄 때 황보령은 거친 목소리로 불협화음을 쏟아냈다. 그의 음악은 아류를 찾기 어려웠고 국적 역시 모호했다. 청자는 피상적으로 이 같은 황보령의 음악적 정체성이 그가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미술을 전공한 화가라는 독특한 이력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만 짐작할 뿐이다.

황보령은 최근 어쿠스틱 음악을 담은 미니앨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As If Nothing Ever Happened)’를 발매했다. 어쿠스틱 앨범이라 편안한 음악인가 싶더니 역시 황보령 답게 불편한 음악의 향연이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합정동 카페 ‘무대륙’에서 황보령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다소 ‘쎈’ 이미지를 가진 ‘뮤지션’ 황보령과는 달리 ‘인간’ 황보령은 잘 웃고 웃길 줄 아는 ‘소녀’였다.

황보령은 “어젯밤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어도 우리는 오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이 같은 삶을 무리 없이 소화하려면 조금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며 “이 같은 생각을 구체화 해 만든 곡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이고 동시에 앨범의 제목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는 ‘매일 매일 매일’, ‘마법의 유리병’, ‘밝게 웃어요’, ‘곤양이 노래’, ‘어디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 등 7곡이 실려 있다. 봄을 닮은 나른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담은 ‘매일 매일 매일’을 제외하면 모두 황보령 다운 낯선 느낌으로 가득하다. 첼로의 선율과 서늘한 한희정의 보컬이 황보령의 거친 보컬과 함께 어우러져 묘한 화음을 이끌어내는 ‘마법의 유리병’, “아저씨발냄새나”와 “아가씨발랄하게” 같은 언어유희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밝게 웃어요’, 반도네온 연주가 황보령의 보컬과 모래알처럼 뒤섞여 황량한 느낌을 주는 ‘어디로’ 등 예사롭지 않은 곡 투성이다. 어쿠스틱의 탈을 썼지만 역시 황보령 다운 앨범이다.

황보령은 “내가 그동안 만든 음악 중 가장 편안한 음악”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오는 6월께 정규 6집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을 대거 재편곡해 실을 생각이다. 어쿠스틱 곡이 어떻게 새로운 사운드로 재탄생하는지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보령은 지난해 9월부터 매달 한 곡씩 이 앨범의 수록곡을 선공개하고 다양한 뮤지션과 콜라보레이션을 벌이는 독특한 형태의 쇼케이스를 열었다. 싱어송라이터 한희정, 소규모아카시마밴드의 송은지, 싱어송라이터 무중력소년, 피아니스트 장경아, 첼리스트 이지영 등 황보령의 음악과 접점을 찾기 어려운 뮤지션들이 많이 눈길을 끈다.

황보령은 “참여 뮤지션 모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밴드 스맥소프트로 앨범을 제작할 때에도 원하는 사운드를 담기 위해 세션을 쓰는 일이 종종 있었다”며 “음악만 비교하면 서로 어울리기 힘들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세계 최대 음악 쇼케이스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 참여해 무대에 올랐던 황보령은 이번 달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출국해 공연을 벌인다.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지하철을 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황보령은 어쩌면 우리가 쉽게 입에 올리는 세계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달 7일 황보령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홍대의 한 클럽에서 공연을 벌였는데, 관객 절반 가량이 외국인이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황보령은 “부모님이 이제 ‘국제 거지’에서 ‘능력 있는 거지’로 부른다”며 웃어보였다.

황보령은 “스웨덴과 독일 등지에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으로 찾아온 관객과 만난 일이 있다”며 “12일에 열리는 네덜란드 공연은 지난해 울산에서 열린 뮤직마켓 에이팜(APaMM) 쇼케이스를 인상 깊게 본 현지 스태프로부터 러브콜이 와서 성사됐고, 17일 프랑스 공연도 현지 팬이 주선해 이뤄진 일”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한국에도 좋은 뮤지션들이 많지만, 뮤지션을 바라보는 언론과 대중의 시각이 너무 편향돼 있어 안타깝다”며 “해외의 관심을 받는 것도 좋지만, 한국의 뮤지션인 만큼 한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며 활동하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