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빌리어코스티처럼 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길을 도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일까?
나는 그동안 입으로만 나 자신을 뮤지션이라고 나불거리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직장인들의 가장 흔한 거짓말 중 하나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말지”다. 이 거짓말이 현실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회사에 불만은 많아도 일상은 그럭저럭 굴러가고, 마땅한 대안이 없는 퇴사는 무모한 도전이란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성은 그만큼 무섭다.
조로 현상이 심각한 대중음악계에서 세션 연주자들은 대개 나이 서른즈음에 고비를 맞는다.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아래에선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새파란 후배들이 치고 올라와 자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결을 이기지 못한 대다수의 연주자들은 도태된다. 일부의 연주자들만이 살아남아 업을 이어가지만 언제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 같은 기로에서 과감히 모든 것을 던지고 자신의 음악을 펼쳐 새롭게 날아보겠다며 거리로 나선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22일 정규 앨범 ‘소란했던 시절에’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빌리어코스티(Bily Acoustie))가 바로 그렇다. 지난 16일 오후 헤럴드경제 본사 인근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내 음악을 하면서 비로소 음악이 다시 즐거워졌다”고 앨범 발매 소감을 밝혔다.
빌리어코스티는 심수봉, 변진섭, JYJ 등 유명 가수들의 앨범ㆍ공연 세션을 비롯해 뮤지션 지망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그는 지난 2004년 제16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파란난장’이란 밴드로 참여해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이후의 삶은 여느 세션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빌리어코스티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노래를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세션 활동에 집중하다보니 언젠가부터 그 꿈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며 “홍대 거리에서 버스킹(거리 공연)을 지켜보면서, 문득 나는 프로 연주자이지만 아무에게도 평가를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어 내 음악을 해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빌리어코스티는 서른즈음인 지난 2012년부터 버스킹을 비롯해 다양한 클럽에서 공연을 벌이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프로 연주자로 활동해 온 그이지만, 거리에서 그는 철저한 신인이었다.
빌리어코스티는 “화려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일처럼 반복되는 세션보다 훨씬 즐거웠고,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며 “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무대의 크기에 관계없이 매우 부담되는 일이었지만, 성취감 또한 컸다”고 회상했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존재하는 홍대 인디신에서 버스킹과 클럽 공연만으로 주목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빌리어코스티는 고심 끝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오디션과 공모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탄탄히 쌓은 기본기에 되살아난 감성까지 보태지자 그는 훨훨 날았다. 그는 ABU라디오송 페스티벌 대상, KBS영상음악 공모전 대상, 파주 포크송 콘테스트 대상, CJ 문화재단의 신인 뮤지션 발굴 지원 프로그램인 ‘튠업’ 13기 우승 등 한 사람의 결과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수상 경력을 쌓았다.
빌리어코스티는 “소속사 없이 시작한 만큼 내 음악으로 진검승부를 펼쳐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공모전 외에 없었다”며 “수상 후 여러 소속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는데, 그중 밴드 불독맨션의 소속사인 디에이치플레이엔터테인먼트가 가장 적극적으로 내 음악에 관심을 보여줘 함께하게 됐다”고 전했다.
빌리어코스티는 신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이번 앨범에는 더블 타이틀곡 ‘그 언젠가는’과 ‘소란했던 시절에’을 비롯해 ‘봄날에 눈이 부신’ ‘너 떠난 오후’ ‘아무래도’ ‘만약에 우리’ ‘고스란히’ ‘한참을 말없이’ 등 10곡이 담겨 있다. 앨범에 담긴 곡은 어쿠스틱 사운드를 강조한 모던록과 팝이 주류를 이룬다. 참여 뮤지션의 면면도 화려하다. 먼저 불독맨션의 이한철이 프로듀싱을 맡아 앨범 전체를 조율해 눈길을 끈다. 보사노바 풍의 곡 ‘고스란히’에는 ‘튠업’의 심사위원으로 인연을 맺은 밴드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이 피처링을 맡았다.
빌리어코스티는 “‘소란했던 시절에’란 타이틀처럼 앨범에 담긴 음악은 어린 시절 서툴렀던 연애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며 “늦깎이 데뷔인 만큼 이미 써놓은 곡이 많아 더 늦기 전에 대중에게 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정규 앨범 발매라는 욕심을 냈다”고 설명했다.
빌리어코스티는 앨범 전곡의 작사ㆍ작곡ㆍ편곡을 비롯해 기타 연주까지 맡았다. 탁월한 기타 연주까지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에서 그는 인디 신의 여러 싱어송라이터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그의 모습은 여러모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존 메이어(John Mayer)를 떠올리게 만든다.
빌리어코스티는 “신들린 연주력을 자랑하는 존 메이어와 나를 비교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민망해서 사양하겠다”며 “팝적인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미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조니 랭(Jonny Lang)을 매우 좋아한다. 언젠가는 그런 블루지한 팝을 연주하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빌리어코스티는 다음 달 ‘뷰티풀 민트 라이프 페스티벌’과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는 “오는 9월께 단독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도 출연해 보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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