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민라'의 일방적인 취소는 대한민국 사회가 대중음악을 얼마나 하찮게 취급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참사다.
블랙홀에서 기타를 치는 원재형과 통화를 하다가 들은 말이 가슴을 후빈다.
"우리가 죄인은 아니지 않나? 왜 큰 사건만 일어나면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인가?"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지난 25일 밤, 기자는 ‘뷰티풀 민트 라이프(이하 ‘뷰민라’)’측 관계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 관계자는 공연이 채 하루도 남지 않았는데 공연장을 제공하는 고양문화재단 측로부터 일방적인 공연 취소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을 답답한 목소리로 전했습니다.
사실 기자는 그 소식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작은 규모로 단 하루 동안 진행하는 공연도 아니고, 2주에 걸쳐 펼쳐지는 공연이 개최를 만 하루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취소되다니 말입니다. 고양문화재단이 이날 오후 5시 54분에 ‘뷰민라’를 주최하는 마스터플랜프로덕션으로 보낸 공문의 내용은 이 같은 소식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공공기관으로서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 희생자와 실종자, 그리고 가족들의 슬픔’을 뒤로한 채, 어떤 형태로든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공연의 정상 진행에 협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 들어 기자의 메일 계정은 매우 가벼워졌습니다. 하루에 수백 건 이상 오던 보도자료 메일이 세월호 참사 이후 뚝 끊겼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도착하는 보도자료 역시 대부분 공연을 취소하고 앨범 발매를 늦추겠다는 내용입니다. 이미 몇몇 페스티벌도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며 개최를 취소하거나 연기한 상황입니다. 당초 5월 3~4일 서울 한강난지공원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그린플러그드 2014’는 5월 31~6월 1일로 개최를 연기했습니다. 오는 7월 26~28일 안산 대부도에서 개최 예정이던 ‘2014 안산 밸리 록페스티벌’은 취소됐습니다. 참사 전 새 앨범을 발표한 뮤지션들 상당수는 알아서 인터뷰까지 자제하며 숨죽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국가적인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고자 웃고 떠드는 일을 알아서 자제하는 것은 분명히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문제는 공연의 연기와 취소가 대중음악에만 집중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뮤지컬과 클래식은 대부분 프레스콜(언론시사회)이나 부대 이벤트 정도만 취소하고 예정대로 본 무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외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 역시 대부분 별다른 일정 변경 없이 펼쳐질 예정이고 또 몇몇 공연은 이미 치러졌습니다. 영화 역시 대부분 홍보만을 자제할 뿐 별 탈 없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대중음악 공연의 무더기 취소와 연기는 사실상 억압에 가까워 보입니다.
공교롭게도 ‘뷰민라’의 취소가 결정된 25일 오전 백성운 고양시장 새누리당 예비후보 측은 성명서를 통해 “수학여행을 떠난 325명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승선한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온 국민이 비통에 잠긴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인데도 술 마시며 강한 흥겨운 가락에 흥겨워해도 되느냐”며 “고양시와 문화재단은 세월호 통곡 속에서 맥주를 마시며 온 몸을 들썩거리게 하는 음악페스티벌과 관련해 100만 고양시민들께 정중히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오는 6월 4일 제6회 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질 예정입니다. 현 최성 고양시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입니다.
뉴시스의 지난 22일 보도에 따르면 백 예비후보는 총동문회 행사장에 참석해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명함을 돌리는 등 선거운동을 벌여 물의를 빚었습니다. 이날 선거운동은 유한식 새누리당 세종시장 후보의 폭탄주 파문에다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중앙당 지침이 내려진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뮤지션들과 음악 팬들이 이번 ‘뷰민라’ 취소를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는 이유입니다.
‘뷰민라’의 갑작스런 취소는 대중음악을 여전히 만만한 ‘딴따라’로 치부하는 일부의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낸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뷰민라’의 개최 장소였던 고양아람누리에서 지난 19일 세계적인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의 내한 공연이 성황리에 치러진 것을 보면 이 같은 인식은 분명해 보입니다.
현재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한 이는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들입니다. 이들은 정부의 부실한 위기관리 체계와 속속 드러나는 비리에 더욱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을 향한 위로는 신속한 현장 수습, 사고 원인의 명확한 규명, 책임자의 처벌이 이뤄질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 어떤 위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속죄양이라도 찾듯이 벌어지는 ‘딴따라’를 향한 애도의 획일화가 과연 정당한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애도의 마음은 모두가 같습니다. 그러나 때려도 제대로 대들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애도의 방법까지 강요하는 것이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들의 진심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침묵하고 있던 많은 뮤지션들이 ‘뷰민라’의 갑작스런 취소에 유독 허탈함과 자괴감을 토로하는 이유입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2014년 4월 25일은 앞으로 대중음악사에 ‘흑역사’로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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