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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래야 “조상님들과 콜라보레이션해 노래방서 불리는 민요 만들고 싶었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8. 8.

데뷔 때부터 내가 무척 애정하는 밴드이자 친한 친구인 고래야.

지난해 '불러온 노래' 공연을 정말 흥미롭게 봤는데, 그 공연이 그대로 앨범으로 만들어질 줄이야! 하하하~

월드뮤직 성향이 강했던 1집과는 달리 확실히 한국적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한 앨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설거나 촌스럽지 않다! 이 노련한 사람들 같으니!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지난해 11월 13~16일 서울 원서동 북촌창우극장에서 독특한 공연이 열렸다. ‘불러온 노래’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 공연에선 토속 민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민요를 무대로 끌어들인 주인공은 밴드 고래야였다. 고래야는 민요가 옛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그 시대의 유행가였다는 사실에 착안해 노동요 등 다양한 민요에 현재성을 더한 음악을 선보였다. 제주 아낙들이 물을 길 때 사용했던 ‘물허벅’, 목화솜을 타던 활을 악기로 활용했던 ‘활방구’, 물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렸던 ‘물방구’ 등 쉽게 볼 수 없는 각종 향토 악기들이 공연에 더해졌다. 

지난해 정규 1집 ‘웨일 오브 어 타임(Whale of a Time)’으로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줘 호평을 받았던 고래야는 이 공연을 통해 이 땅의 잊힌 소리를 현재에 되살리는 것이 향후 목표임을 드러냈다. 고래야의 정규 2집 ‘불러온 노래’는 그 첫 번째 결실인 셈이다. 지난 5일 서울 재동의 한 카페에서 고래야의 멤버 옴브레(기타), 김동근(대금ㆍ소금ㆍ퉁소), 경이(퍼커션), 권아신(보컬), 정하리(거문고), 김초롱(퍼커션)을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경이는 “전통음악에 현대적인 요소를 강화하는 시도는 이미 많이 이뤄진 터라 다음 앨범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우연히 1900~1910년 사이에 불린 민요들과 만나게 됐다”며 “주제도 흥미로웠고 정서적으로도 현재와 통하는 부분이 많아 이를 복원해 무대에 올렸는데 매우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와 앨범 발매를 결심했다”고 앨범 제작 의도를 밝혔다.

옛 유행가를 현대의 유행가로 되살리는 과정은 지난했다. 1차적인 자료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로 유명한 최상일 PD가 30년에 걸쳐 채록한 민요였다. 최 PD가 전국 각지를 돌며 채록한 민요는 CD만으로 100여 장의 분량이었다. 가사집과 해설집의 분량 역시 방대했다. 고래야는 이 모든 CD를 세심하게 듣고 요약해 ‘신세한탄’, ‘시집살이’ 등 주제 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옴브레는 “처음부터 앨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공연은 아니었는데, 무대에 올려 보니 그 자체로도 충분한 완성도를 가진 하나의 앨범 같은 결과물이 나와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며 “이 앨범은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사이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던 고래야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잡아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경이는 “민요의 생명력은 시대상을 반영한 끊임없는 변화로부터 오는데, 그 명맥이 한 세기 이상 끊어진 터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부분을 정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민요는 오늘날 대중가요와는 달리 1절에선 사랑타령, 2절에선 시집살이가 등장하는 등 내용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대성을 가진 가사를 뽑아 1곡을 완성하는 데에 6~7곡의 민요를 조합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론적으로 매우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앨범에는 한국의 전통놀이인 투전(鬪錢)을 랩 배틀 형식으로 표현한 타이틀곡 ‘잘못났어’를 비롯해 농번기 때 들판에서 울렸던 ‘상사소리’를 차용해 직장 상사를 비꼰 ‘상사놈아’, ‘물허벅’ 소리를 전면에 내세워 노동의 고달픔을 표현한 ‘아이고 답답’,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민요 가사들을 엮어 보사노바 풍의 편곡으로 담아낸 ‘애원이래’, 목화솜을 타던 활을 연주에 활용해 인생의 황혼기를 담담하게 노래한 ‘생각나네’ 등 13곡이 수록돼 있다. 특히 강렬한 기타 리프와 퉁소, 물바가지, 싸리비 등 전통악기 및 생활 도구를 활용한 다채로운 연주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잘못났어’는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져 조화를 이뤄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역작이다. 

권아신은 “나는 전문적으로 판소리를 익혀왔지만 그동안 배울 수 없던 많은 것들을 민요를 통해 깨달았다”며 “민요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이고 이를 잘 살려 녹음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동근은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곳곳에 삽입된 퉁소 연주”라며 “이제 연주자조차 찾기 어려워진 퉁소를 합주에 활용할 가능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번 앨범은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이는 “민요의 가사는 웬만한 요즘 가요의 가사 이상으로 재기발랄하다”며 “단순히 민요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 노래방에서도 불릴 수 있는 유행가로 민요를 재탄생시키고 싶었다는 점에서 이번 앨범은 ‘조상님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고래야는 세계 최대 공연 예술 축제인 ‘에든버러 프린지(Edinburgh Fringe)’에서 공연을 펼쳐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첫 주 10명 내외의 관객으로 시작한 고래야는 특별한 홍보 없이 공연과 입소문만으로 관객을 늘려나가며 마지막 주엔 매진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 현지 페스티벌 매거진 스리윅스(ThreeWeeks)는 고래야의 공연에 대해 “색다르고 이색적이며 초현실적인 음악”이라고 평하며 별점 4개를, 브로드웨이베이비는(BroadwayBaby)는 “혼을 빼놓는 음악”이라며 최고 평점인 별점 5개를 줬다.

옴브레는 “영어 가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벌일 때마다 반응이 점점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보고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며 “1주만 더 머물러 공연을 벌였으면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얻었을 것이란 아쉬움도 남아있다”고 회상했다. 경이는 “국악은 그동안 지켜줘야 할 대상이었지 대중에게 멋진 이미지를 보여주진 못했다”며 “우리는 그 자체로 록스타처럼 멋진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고래야는 오는 26~31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한다. 다음 달 12일에는 브라질 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브라질 음악의 전설적인 존재인 퀸테토 비올라도(Quinteto Violado)와 함께 공연을 벌일 예정이다.

김동근은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던 지난해 공연과는 달리, 이번 앨범 녹음에 참여했던 스태프까지 참여해 음향에도 만전을 기한 완성도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