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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사실주의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문학동네) 일단 제목이 정말 죽인다.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한국 문학 단행본 제목 중에서 이보다 내 눈길을 확 사로잡은 제목은 없었다.월급쟁이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서점 매대에 놓인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테다.제목 같은 사람을 조직에서 만나 뒷목을 잡아 본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었을 테니 말이다.이 책은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두 번째 앤솔러지다.지난해에 출간된 첫 번째 앤솔러지 가 많은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두 번째 앤솔러지에는 어떤 작가가 참여해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가 많았다.첫 번째 앤솔러지는 전반적으로 내용이 무거웠고, 참여 작가도 많아(11명) 책도 무거운 편이었다.그래서 두 번째 앤솔러지는 그보다 조금 가볍게 나오기를 기대했다.다행히 기대한 대로 첫 번째 앤솔러지에서 느껴졌던 비장.. 2024. 5. 4.
심아진 장편소설 <프레너미>(강)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한 35살 남자가 있다. 아내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남자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남자는 그런 아내의 뒤를 밟으며 비난할 구실을 찾는다. 이런 가운데 옛 연인과 돌아가신 어머니 등의 모습을 한 여러 환영이 남자를 성가시게 한다. 남자는 그 환영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역추적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어떻게 이별로 끝났는지를 돌아본다. 책을 덮으며 오래전에 경험했던 사랑과 이별을 떠올렸다. 10년에 가까운 오랜 연애가 끝났을 때, 나는 도대체 왜 이별 통보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상대방이 든 이유는 누가 들어도 핑계였지만, 나는 진짜 이유를 듣기가 두려워서 더 캐묻지 않았다. 시간이 1년 넘게 흘러 다른 사람 입을 통해 그 이유를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비참해서 차.. 2024. 5. 3.
정승진 동화집 <늙은 개>(마루비) 첫 소설집과 새 장편소설 작업을 핑계로 읽기를 미루다가 뒤늦게 펼쳤다. 책을 덮을 때 든 기분은 착잡함과 서글픔 사이의 어딘가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에서 수위를 살짝 낮추고 배경을 현재로 옮기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 어머니께서 헌책방에서 사 온 의 종이 삭은 냄새가 느껴졌다. 이 동화집은 다양한 동물(혹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시선으로 민담, SF 등을 차용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렸을 때 쥐가 손톱을 먹으면 나로 변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 때문에, 지금도 손톱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미신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 손톱을 먹은 쥐가 나로 변했다고 치자. 나로 변한 쥐는 나를 대신해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복잡한.. 2024. 4. 30.
김호연 장편소설 <나의 돈키호테>(나무옆의자) 김호연 작가는 데뷔작 를 비롯해 모든 장편소설을 따라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다.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자세와 재지 않는 문장에 스며들어 있는 온기를 사랑한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된 지금이든 덜 유명했던 과거에든, 여전히 나는 작가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다. 이번에도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 중인 이 작품을 보고 바로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인연을 맺었던 소년 소녀들과 가게 주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소년 소녀들이 다시 모여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돈키호테를 자처했던 가게 주인을 추적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의 작품답게 당연히 따뜻하고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쉽게 읽히고 희망적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메가 히트작인 .. 2024.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