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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먼 이국 땅서 펼쳐진 ‘보헤미안’ 김두수의 자유혼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1. 21.

무슨 말이 필요한가...

전설을 만났다.


얼마 전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인 최규성 선배와 함께 김두수 선생님이 칩거 중인 군산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산됐다.

다행스럽게도 김두수 선생님이 이날 하루 시간을 내 서울로 올라오셔서 많은 일정을 소화하셨다.

나와 인터뷰를 마친 김두수 선생님은 이후 동아일보, 한겨레와 인터뷰를 진행한 뒤, 여기저기 오랜만에 라디오 방송 출연도 하신 모양이다.

언젠가는 군산에서 얼굴을 뵐 날이 오길 바라며...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세상의 어느 아름다운 꽃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설명하진 않는다. 대자연의 신비로운 풍경 앞에서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는 말장난 같은 말은 진실에 가까워지곤 한다. 언어는 종종 시야를 압도하는 아름다움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두수의 음악은 바로 그런 음악이다. 

세상사의 번잡함을 내려놓은 듯 아닌 듯한 떨리는 목소리. 선시를 닮은 노랫말과 쓸데없는 음을 줄임으로써 역설적으로 넓어진 소리의 공간. 지난 30년 동안 김두수가 펼쳐 온 음악 세계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를 아는 소수의 열정적인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진작부터 예술적 차원에서 바라봤다. 지난 2008년 모 일간지 선정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 그의 정규 4집 ‘자유혼’을 명단에 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이다.

자유를 노래하면서도 도시와 떨어진 곳에서 은둔하며 쉽게 응답하지 않았던 김두수가 조용히 정규 6집 ‘곱사무’를 발표하며 돌아왔다. 만 7년여 만에 새 정규작을 발표한 그가 21일 칩거 중이던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났다.

정규 6집 ‘곱사무’를 발매한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두수가 23일 오후 서울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김두수는 “앨범 타이틀 ‘곱사무’는 현대인들의 왜곡된 자아를 그린 자화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오래 전부터 나는 ‘사람의 생과 여정’과 ‘자연과 우주와의 교섭’이란 주제에 천착해 왔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탐구해야 할 주제”라고 말했다.

김두수가 지난 1991년에 발표한 정규 3집의 수록곡 ‘보헤미안’은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곡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 작업은 ‘보헤미안’의 본고장인 체코에서 이뤄져 눈길을 끈다. 월드뮤직을 방불케 하는 김두수의 음악은 한국보다 오히려 일본과 영미권에서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두수는 그의 앨범을 유통했던 일본 레이블을 통해 지난 2012년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투어를 벌이기도 했다. 


김두수는 “단 한 번도 체코 여행을 해본 일이 없었는데, 유럽에서 투어를 벌이던 중 운이 좋아 체코의 뮤지션들과 인연이 닿았다”며 “사실상 여행을 겸한 작업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 교감하는 일이 쉽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어색함이 없어 앨범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는 꿈을 꾼 후의 단상을 11분여의 대곡으로 정리한 ‘레든(Leaden)’을 비롯해 체코 현지에서 만든 곡이자 고즈넉한 트럼펫 연주가 긴 여운을 주는 ‘노을’, 기타 트레몰로 주법이 인상적인 ‘바람개비’, 유럽 투어 중 친분을 맺은 스코틀랜드의 시인 앨러스데어 캠벨(Alasdair Campbell)의 시를 번안해 곡을 붙인 ‘낙화’, 가사의 어근과 어미의 반복을 통해 끝없는 물결의 흐름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표현한 ‘강 건너기’ 등 11곡이 수록돼 있다. 또한 앨범 재킷에는 마치 굽은 나무가 춤을 추는듯한 형상의 유화가 담겨 있어 공감각적 심상의 형성을 돕는다. 김두수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가사의 의미와 곡의 배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말을 아끼며 공을 청자에게 넘겼다.

김두수는 “곡에 대해 많은 설명을 늘어놓을수록 청자가 곡에 개입할 여지는 줄어든다”며 “곡을 만든 사람은 나이지만 그 곡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은 청자 저마다의 몫”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미개척지로 남겨지는 것이 더욱 아름다울 것으로 보인다.


녹음은 이번 앨범에 베이시스트와 엔지니어로 참여한 체코의 뮤지션 얀 체르니(Jan Cerny)의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녹음에 참여한 연주자들 역시 체코 국립 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트 주자인 마틴 체흐(Martin ech),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레코네(Ennio Morricone)의 공연 동반자인 아코디언 연주자 파벨 드레셔(Pavel Drešer) 등 체코 현지의 저명한 뮤지션들이다. 그만큼 이번 앨범에는 전작에선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악기의 소리와 이국적인 정취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자연스러운 연주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마스터링(녹음된 여러 곡의 음색과 소리를 조절해 균형을 전체적으로 잡아주는 과정)을 생략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김두수는 “녹음을 진행한 스튜디오는 작은 개울이 흐르는 숲과 가까운 조용한 곳이었다”며 “방음 부스를 따로 만들지 않고 열린 공간에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위적이거나 자극적인 음향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람과 악기 본연의 소리를 꾸밈없이 조화롭게 배치하는 시도를 했다”며 “내 음악의 특성상 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욱 많았기 때문에 과감히 마스터링을 생략했다“고 덧붙였다.

은둔의 이미지와는 달리 김두수는 늘 음악으로 자유에 대한 갈망을 노래해왔다. 이 같은 모순에 대해 그는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도 실제로 만나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자유롭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다”며 “허황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를 그리워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내가 자유를 노래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은 일본에서 고음질 SHM-CD(Super High Material CD)로 제작돼 눈길을 끈다. 고사양 오디오 보유자라면 관심을 기울여 볼만한 앨범이다. 또한 이번 앨범은 오는 3~4월께 LP로도 발매될 예정이다.

이번 앨범을 제작한 리듬온의 손병문 대표는 “LP는 게이트 폴더 형식에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더블 LP로 제작된다”며 “고음질을 위해 중량반으로 발매되며 체코에서 제작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당분간 국내에서 김두수의 신곡을 들을 수 있는 단독 콘서트를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대신 그는 오는 3월부터 일본에서 클럽 투어를 벌일 계획이다. 

김두수는 “국내에서도 종종 30~40여 명의 관객을 모아 벌이는 작은 음악회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세월이 조금 더 흐른 뒤 새 앨범의 곡을 다른 모습으로도 들려줄 수 있는 날이 오면 단독 콘서트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