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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3. ‘풍년화’는 안다…추위를 견뎌야 봄이 온다는 것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2. 9.

'식물왕'은 처음엔 약간 개그로 시작한 기획인데 쓰다보니 진지해지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초심을 지켜야 하는데..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이 있지요? 역시 옛말 그른 데 없습니다. 입춘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한파가 들이닥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9일 오전 8시 서울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12.5도를 기록했습니다. 초봄을 방불케 했던 포근한 날씨는 오간데 없이 서울에는 제법 굵은 눈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다시 겨울의 한복판 입니다.

옛사람들은 “삼한사온(三寒四溫)이면 풍년, 이상난동(異常暖冬)이면 흉년”이라며 겨울 추위로 이듬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쳤다고 합니다. 또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야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풍년이 든다는 말은 일종의 상식이기도 하죠.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수목원에서 촬영한 풍년화.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겨울 추위 외에도 농사의 풍흉을 알리는 지표로 손꼽히는 것이 풍년화입니다. 봄이 오기 전, 마른 껍질을 뚫고 가지 겨드랑이마다 가늘고 길게 갈래진 노란 꽃잎을 가득 피워내는 풍년화는 무채색의 계절에 가장 반가운 손님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풍년화가 만개하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까지 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눈이 많이 내려 비교적 기온이 따뜻해지면, 그만큼 겨우내 마른 땅에 물이 풍부해져 가지에 꽃잎이 풍성하게 매달릴 테니, 풍년화로 풍흉을 점치는 것도 과히 틀린 방법은 아닌 듯합니다.

사실 풍년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풍년화는 일본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지난 1923년 서울임업시험장에 처음 시집을 왔다고 합니다. 언어와 문화권이 다르면 같은 꽃이어도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서도 풍년화를 풍작을 의미하는 ‘만사쿠(作)’로 부른다는군요. 농경문화권인 양국 사람들이 풍년화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가지를 가득 채운 노란 꽃잎을 바라보면 절로 풍년이 들 것 같은 예감이 드니 말입니다. 또한 풍년화의 수피(樹皮)와 잎에서 추출한 성분은 천연 항균 재료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죠. 풍년화보다 위치하젤(Witch Hazel)이라고 부르면 조금 익숙하실 런지요. 물티슈에서 많이 보신 기억이 있죠?

강추위의 기습 속에서 풍년화 개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걸 보니 이제 정말 봄이 오긴 오려나 봅니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죠? 풍년화의 노란 꽃잎을 작은 횃불로 삼아 함께 남은 겨울을 건너가보죠. 다가올 봄은 따뜻하고 밝을 겁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