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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노예가 노예를 물어뜯는 이상한 세상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2. 23.

나는 사석에서든 온라인에서든 되도록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삼가거나 대충 묻어서 넘어가는 편이다.
나는 기자를 가치중립적이어야(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기자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비겁하다고 말하면 할 말 없다.
그러나 현실로 와 닿는 경제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엔 정치권에 대한 욕지기를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오랫동안 창문 없는 고시원, 창문 있는 고시원, 반지하방, 지하실에 가까운 반지하방 등 한국에서 돈 없는 젊은이들이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의 모든 주거지를 수시로 전전하며 살았다. 집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하루하루가 급했다. 노력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대한민국에선 판타지다. 지금 나는 결혼하겠다고 아등바등 거리고 있지만 수중에 있는 돈은 서울에서 방 두칸 짜리 전세를 얻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얼마 전 부동산 앞에서 매물을 보다가 화가 나서 돌아섰다. 아파트 한 채가 5억 원이라... 10년 동안 매해 5000만원 씩 저금하면 5억이다. 나 같이 아무 것도 없는 놈에겐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다.


기득권 층 입장에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매우 편해진다. 그리고 기득권층은 여론을 그런 방향으로 몰으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물어뜯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눈에 띄는 사례는 박창진 사무장의 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는 기사를 내보낸 언론사와 이를 보고 박 사무장을 헐뜯는 많은 댓글들이었다. 노예가 같은 노예를 물어 뜯지 못해 안달이라니……. 이런 사태를 온라인에서 목격하기 쉬운 곳이 일베이다. 기득권층은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비웃고 있을까.


만약 내가 4년 전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나는 서울에서 기자로 살아갈 엄두조차 못 냈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 코딱지만 한 원룸에서 말도 안 되는 보증금을 전세금이라로 지불하며 살수 있게 된 것은 문학상 상금 덕분이다. 운이 매우 좋았다. 그 운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아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운은 가정을 꾸려 안정된 삶을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래저래 금수저들이 '윈'인 세상이다. 방값을 보다 화가 나서 잡설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