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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금기를 금기하라…더욱 아슬아슬하게 돌아온 가인의 진화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3. 9.

가인은 아이돌 출신 솔로 중 가장 탁월한 성취를 거두고 있는 가수 중 하나이다.

시사회가 끝난 뒤 가인과 따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반은 진심으로 "잘하면 한국의 마돈나 같은 존재가 될지 모르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가인은 손사래를 쳤지만 싫진 않은 눈치였다. 영민한 가수이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언젠가부터 가수 가인은 아이돌의 차원에서 제단하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 가인의 솔로 활동은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일원으로 활동할 때와 비교해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아이돌 음악에선 다소 낯선 탱고를 선보였던 ‘돌이킬 수 없는’부터 절제된 관능미를 보여줬던 ‘피어나’, 불편하면서도 아름다웠던 ‘Fxxk U’까지……. 아슬아슬하게 금기를 넘어서는 가인의 관능미는 같은 콘셉트를 내세우는 다른 걸그룹들과 비교해 독특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극이 강해지면 역치(値)도 높아지는 법이다. 대중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아는 가인의 고민은 깊었을 터이다. 고심 끝에 그가 들고 온 주제는 성경 속의 인물로 인류 최초의 여성이자 원죄의 주인공인 ‘하와(Hawwah)’였다.



가인은 9일 오후 서울 영등포동 CGV 영등포에서 네 번째 미니앨범 ‘하와’의 시사회를 가졌다. 가인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 대중은 내게 결코 쉬운 주제를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내게 ‘하와’는 처음엔 어려운 주제였지만 알면 알수록 매우 극적인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였다”고 앨범 발매를 앞둔 소감을 밝혔다.

가인은 이 자리에서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패러다이스 로스트(ParadiseLost)’와 ‘애플(Apple)’을 비롯해 ‘프리 윌(Free Will)’ ‘더 퍼스트 템테이션(The First Temptation)’ ‘두 여자’ ‘길티(Guilty)’ 등 수록곡 전곡과 두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이번 앨범에는 휘성, 박재범, 도끼, 매드클라운 등 동료 선후배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해 힘을 보탰다. 특히 ‘길티’를 작사한 매드클라운은 이번 가인의 앨범을 통해 처음으로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작사해 눈길을 끈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앨범의 작사 작업을 총괄하는 리릭 프로듀서(Lyric Producer)를 따로 둔 것이다. 가인의 첫 솔로 앨범부터 작사가로 참여해 온 김 작사가가 리릭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김 작사가는 ‘하와’의 선악과를 취하기 전 순수한 모습과 뱀의 유혹을 받아 갈등하는 모습, 취한 뒤 거듭나는 모습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앨범의 스토리텔링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작업을 맡았다. 이 같은 작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예이다. 그 결과 이번 앨범은 가요계에선 보기 드문 콘셉트 앨범(전체적으로 일관된 주제와 이야기를 스토리를 설정해 통일감을 주는 앨범)의 형태를 띄게 됐다.


가인은 “‘하와’를 앨범의 주제로 설정한 뒤 김 작사가가 먼저 ‘패러다이스 로스트’와 ‘더 퍼스트 템테이션’의 가사를 썼고, 외부 작사가에게 가사를 요청할 때 두 곡의 가사를 보내 주제를 참고하도록 했다”며 “그 결과 서로 다른 작사가들이 참여해 개성적인 가사를 쓰면서도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시사회에 동행한 김이나 작사가는 “‘하와’는 종교적인 주제이지만 종교의 영역에서 벗어나 바라보면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캐릭터”라며 “하와 안에 뱀이 있다, 또는 하와가 뱀일 수 있다는 픽션을 더해 극적인 요소를 만들어냈다. 하와가 여성이라는 점을 떠나 하나의 주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사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곡은 뮤직비디오로 선보인 두 타이틀곡이었다. ‘패러다이스 로스트’는 가인의 첫 솔로 앨범부터 함께 해 온 이민수 작곡가와 김이나 작사가의 작품이다. 이 곡은 성경 속 하와와 그를 유혹하는 뱀을 별개의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다소 비장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파이프 오르간과 현악 연주로 곡의 규모를 키웠다. 갑작스럽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뱀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가인의 안무와 뱀의 비늘을 연상케 하는 전신 타이즈 의상이 영상에 감각적인 미학을 더한다. 


가인은 “느리게 움직이다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는 뱀의 속도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며 “다소 난해한 안무를 소화하기 위해 2달 간 현대무용 강습을 받으며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김 작사가는 “단순히 한 남자를 유혹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근본을 흔들어놓을 정도의 유혹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타이틀곡 ‘애플’은 ‘패러다이스 로스트’와는 다르게 가벼운 느낌의 펑키한 곡이지만, 가사가 다소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19금’ 판정을 받았다. ‘애플힙’을 강조하는 몸에 달라붙는 붉은 의상이 인상적인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패러다이스 로스트’와는 달리 밝은 톤의 영상이 특징이다.

가인은 “마르고 볼륨이 없는 몸매여서 ‘애플힙’을 만들기 위해 하체 운동만 3개월을 했다”며 “아슬아슬하지만 노골적인 가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인은 매번 파격적이면서도 어려운 주제를 음악으로 소화하는 처지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가인은 “가끔 대중적이면서도 친숙한 주제를 다루는 아이유가 부러울 때도 있지만, 아티스트의 갈 길은 저마다 정해져 있는 것 같다”며 “이젠 외부 작곡가들도 내게 유행을 탈만한 곡을 주지 않는다. 이 것이 내 운명인 것 같다”고 고백했다.

가인은 오는 12일 앨범을 발매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다만 ‘파라다이스 로스트’의 안무는 방송 심의 때문에 지상파 방송에선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날 가인이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 벌어는 컴백무대가 사실상 온전한 안무를 감상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될 전망이다. 가인은 “지금 안무로 지상파 방송에 출연할 수 없는 상황이라 ‘멘붕’이 왔다”며 “안무 영상을 따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귀띔했다.

123@heraldcorp.com


사진설명 : 가수 가인이 오는 12일 네 번째 미니앨범 ‘하와(Hawwah)’를 발표하며 컴백한다. [사진제공=에이팝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