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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로움의 감동…미리 들어본 한대수 데뷔 앨범 40주년 헌정 앨범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4. 6.

지난 달 중순께 한 대수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는 한 대수 데뷔 앨범 40주년 헌정 앨범 관련 기사들이 매체 이곳저곳을 통해 보도된 상황이었다. 특별한 일 없이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여서 나는 한 선생님께 앨범 관련 기사들을 잘 봤다고 덕담을 건넸는데, 뜻밖에도 한 선생님은 녹음이 모두 끝나면 가장 먼저 정 기자에게 앨범을 들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땐 그냥 지나쳤는데, 지난 2일 저녁에 정말로 약속이 지켜졌다. 작은 음악감상회가 갑작스럽게 한 대수 선생님의 좁은 방 안에서 열렸다.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취재를 하고 또 기사를 마감하느라 노엘 갤러거 내한 공연을 놓치고 말았지만, 덕분에 나는 앨범 제작 관계자들 외에는 처음으로 이 앨범을 미리 모두 듣는 호사를 누렸다


좋은 헌정 앨범이 나왔다. 재능기부로 기꺼이 참여해준 모든 뮤지션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4월 6일자 29면 톱에 실린다.


오래된 새로움의 감동…미리 들어본 한대수 데뷔 앨범 40주년 헌정 앨범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익숙한 듯하나 신선하고, 투박한 듯하나 세련된 음악이었다. 데뷔 앨범 ‘멀고 먼 길’ 발매 40주년을 맞은 ‘한국 포크의 전설’ 한대수를 재조명하고자 한자리에 모인 가요계 절정고수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지난 2일 서울 창천동 소재 원룸으로 기자를 초대한 한대수는 데뷔 앨범 발매 40주년 기념 헌정 앨범 ‘리버스/리버스(Reverse/Rebirth)’의 수록곡 전곡을 본보에 최초로 들려주며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앨범을 귀 기울여 듣는 기자를 맥주를 마시며 바라보던 한대수의 상기된 표정은 어린 아이처럼 천진했다. 고시원을 연상케 하는 좁고 어지러운 방의 누추함 속에서 귓가로 울려 퍼지는 오래된 신곡들은 찬란했다. 


‘한국 포크의 전설’ 한대수 데뷔 앨범 ‘멀고 먼 길’ 발매 40주년 기념 헌정 앨범 ‘리버스/리버스(Reverse/Rebirth)’가 이달 중 발매된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한대수는 “한 명 한 명 대가(大家) 소리를 듣는 뮤지션들이 오로지 ‘로큰롤 할배’ 하나를 위해 모였다는 사실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며 “선착순으로 걸러내야 할 정도로 많은 뮤지션들이 나서줘 앨범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앨범에는 ‘행복의 나라로’ ‘물 좀 주소’ 등 한대수의 대표곡들을 재해석한 곡들을 비롯해 신곡 ‘나는 졌어’ ‘내 사랑’까지 총 13곡이 실려 있다. 조영남과 전인권부터 인디 뮤지션 몽니와 장기하까지 참여 뮤지션의 세대와 장르의 스펙트럼이 방대하다. 한대수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대수는 “함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미영 PD가 데뷔 앨범 발매 40주년의 의미를 강조하며 기획에 나섰는데 많은 이들이 즐겁게 자기 일처럼 나서줘 감동을 받았다”며 “프로듀싱을 맡은 기타리스트 손무현 한양여대 교수를 비롯해 모든 뮤지션들이 재능기부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고 전했다.


한대수 데뷔 앨범 ‘멀고 먼 길’ 발매 40주년 기념 헌정 앨범 ‘리버스/리버스(Reverse/Rebirth)’ 녹음을 위해 모인 참여 뮤지션들. [사진제공=한대수]


참여 뮤지션들의 음악적 개성과 원곡의 정서는 서로 반목 없이 제3의 길을 걸으며 또 다른 세계를 모색하고 있었다. 윤도현은 ‘행복의 나라로’를 호쾌한 록으로 변모시킨 뒤 한대수의 목소리를 끌어들여 앨범의 문을 열었다. 한대수를 ‘쎄시봉’ 시절부터 지켜본 조영남은 ‘바람과 나’를 특유의 깊은 목소리로 여유롭게 소화하며 연륜을 드러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추모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관심을 모았던 ‘그대’는 잔잔한 멜로디를 살리는 클래지콰이의 호란의 섬세한 목소리와 함께 매력적인 팝으로 변신했다. 전인권은 오래전 한대수가 겪은 어두운 시대를 ‘자유의 길’을 통해 쓸쓸하면서도 짙은 목소리로 되짚는다. ‘옥의 슬픔’은 간소한 편곡과 강산에의 걸쭉한 목소리와 만나 헛헛함을 더했다. 몽니는 강력한 록 사운드로 무장한 ‘멍든 마음 손에 들고’로 더 이상 젊지 않은 한대수를 대신해 도발한다. H2O의 베이시스트 김영진은 ‘과부타령’을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만드는 펑키한 록으로 재탄생시켰다. ‘반복’과 ‘부활’을 의미하는 앨범 타이틀 ‘리버스/리버스’는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한대수는 “강산에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수도 없이 녹음을 반복하고, 전인권도 다양한 아이디어 제공을 자처하는 등 모두가 즐겁게 앨범 작업을 하는 모습은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라며 “리메이크가 원곡 이상의 감동을 주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 리메이크는 원곡과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며 각자 새로운 진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상 깊은 풍경은 ‘물좀 주소’ ‘런 베이비 런(Run Baby Run)’이다. 이현도와 가리온의 MC메타가 전자음과 랩을 더해 현대적인 의상으로 갈아입힌 ‘물 좀 주소’는 이번 앨범의 성격인 오래된 새로움을 잘 드러내는 극적인 작품이다. 한대수가 ‘4G’라고 아껴 부르는 김목경, 김도균, 신대철, 손무현 등 정상급 기타리스트 4명의 블루스 잼 협연은 ‘런 베이비 런’을 멋들어진 로큰롤로 승화시켰다.

한대수는 “이번에 앨범 작업을 하면서 한국의 녹음 시스템, 편곡, 세션 연주자들의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음을 느꼈다”며 “지금처럼 아이돌 일변도의 음악 시장에서 많은 대가들이 참여한 포크와 록에 충실한 앨범이 발매될 수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리메이크만큼이나 반가운 것은 신곡 ‘나는 졌어’ ‘내 사랑’이다. ‘나는 졌어’는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반전과 평화를 위해 새롭게 시작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고, ‘내 사랑’은 유치하고도 순진한 사랑에 대한 곡이다. 특히 ‘내 사랑’은 만든 지 거의 반세기 만에 처음 공개되는 곡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한대수는 “‘내 사랑’은 1968년 쎄시봉에서 연주하던 시절, 냄새나는 내 청바지를 직접 빨아줬던 여자를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유치하게 느껴져서 묻어둔 곡”이라며 “내가 지금 부인에게 반한 이유는 내 셔츠를 다림질해주는 모습 때문이고, 그런 일상의 사소한 모습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참여 뮤지션들의 열정과는 별개로 이번 앨범은 기획 초기에 제작비 조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음악적 의미와는 별개로 앨범의 상업적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보니 선뜻 제작에 나서는 음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비 조달은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을 통해 이뤄졌고, 한대수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적극 제작비 충원을 도왔다.

한대수는 “처음에는 마치 아쉬워서 손 벌리는 것처럼 느껴져 크라우드 펀딩을 망설였지만, 팬들이 적극 참여했다는 점에서 뜻 깊은 경험이었다”며 “스튜디오에서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정말 제대로 녹음한 앨범이다. 이 앨범이 록, 포크, 블루스 등 다양한 음악들을 주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대수는 오는 25~26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연다. 한대수가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은 201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벌인 콘서트 이후 처음이다. 이와 더불어 그는 자신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엮은 책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북하우스)’도 출간한다.

한대수는 “LG아트센터가 무대에 록 음악을 기획해 올리는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다”며 “열린 마음으로 찾아와 편안하게 공연을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 최고의 사운드로 보답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