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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승철 “오랫동안 한자리에 서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5. 26.

음악적 집요함과 여유로움이 함께 드러나는 수작

정말 잘 만든 앨범이다. 필청!


이 인터뷰 기사는 헤럴드경제 5월 26일자 28면 톱에도 함께 실린다.

이승철 “오랫동안 한자리에 서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많은 사람들이 제게 오랜 세월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비결을 묻습니다. 그런 비결을 따로 생각해본 일은 없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한자리에 서있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요.”

매 시간 요동치는 실시간 음원차트에 희비가 갈리는 가요계. 가수 이승철은 한치 앞의 미래조차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가요계에서 올해로 무려 데뷔 30년차를 맞았다. 80년대 중반 한국 헤비메탈의 태동기와 90년대 가요계의 황금기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승철은 세대를 넘어 늘 대중과 함께 였던 보기 드문 가수이다. 탁월한 보컬에 낡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한 노력이 더해지자 그는 아이돌들이 즐비한 음원차트에 이름이 올라도 어색하지 않은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이승철이 26일 정규 12집 ‘시간 참 빠르다’를 발표한다. 그는 앨범 발매에 앞서 지난 21일 오후 서울 청담동 디자인앤오디오에서 앨범 전곡을 미리 들어보는 음악 감상회를 마련했다. 11집 ‘마이 러브(My Love)’ 이후 2년 만의 신보인 이번 앨범에는 편안한 가운데에서도 조용한 음악적 파격을 보여주는 다양한 음악들이 담겨 있다.

가수 이승철이 26일 정규 12집 ‘시간 참 빠르다’를 발표했다. [사진제공=진앤원뮤직웍스]

▶ 편안한 가운데서도 개성적인 음악= 이승철은 “기존 편곡자들에게 곡을 맡기면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 편안하게 들리는 방향으로 편곡이 이뤄지는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편곡자로 나서 개성적인 편곡을 시도했다”며 “음악적 뿌리가 밴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 리프(반복 악절) 중심으로 편곡하고, 가요에선 듣기 어려운 풀 오케스트라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인 팝 발라드 ‘시간 참 빠르다’를 비롯해 싱글로 선공개됐던 ‘마더’, ‘시련이 와도’ ‘달링’, ‘비 오는 거리에서’, ‘사랑한다구요’, ‘한 번 더 안녕’, ‘그리움만 쌓이네’ 등 11곡이 수록돼 있다. 전해성 작곡가가 거의 전곡을 작곡했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앨범에는 신구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곡가들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이승철은 전 작곡가와 히트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를 비롯해 한수지, 김유신, 4번타자 등 신인 작곡가를 과감하게 기용해 작곡을 맡겼다. 또한 그는 음원 차트에서 주목을 받기 위한 그 흔한 피처링도 없이 홀로 모든 곡을 소화했다.

이승철은 “이번 앨범 제작을 위해 200곡 이상을 받았는데, 곡을 고르다 보면 항상 신인 작곡가의 곡들이 끼어 있었다”며 “작곡가들이 원하는 창법과 느낌이 무엇인지 많은 연구를 했고 이승철 답지 않게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승철의 이승철 답지 않게 부르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곡 중 하나는 ‘시련이 와도’이다. 이승철의 데뷔작인 부활 1집 수록곡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강렬한 탁성은 곡의 애절함을 배가시키는 요소이다. 이승철은 자신의 색깔을 덜고 곡의 감정을 살리기 위해 녹음 당시 작곡가의 의중을 반영한 가이드 녹음을 실시간으로 들으며 노래를 녹음하는 독특한 시도를 했다.

이승철은 “곡을 실제로 녹음할 때 가이드 녹음의 느낌이 살지 않아 고민하다가 왼쪽 귀로 가이드 보컬, 오른쪽 귀로 내 목소리가 들으며 녹음했다”며 “기존의 이승철답지 않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자신했다.

▶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집요한 노력= 이승철의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집요했다. 레이디 가가(Lady Gaga), 비욘세(Beyonce) 등 팝스타들과 작업했던 거장 토니 마세라티(Tony Maserati)를 비롯해 스티브 핫지(Steve Hodge), 댄 패리(Dan Parry) 등 세계적인 엔지니어들이 믹싱을 맡았다. 최고의 음악을 향한 그의 집요함은 1억 2000만원을 들여 1877년에 제작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구입하는 사건으로도 이어졌다. 또한 그는 오케스트라를 도입해 자연스러운 어쿠스틱 사운드를 강조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전곡의 드럼 연주를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작업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로 변화를 꾀했다.

이승철은 “편곡을 하면서 청자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감성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를 표현하려면 경험이 풍부한 세계적인 엔지니어들의 녹음이 필요했다”며 “해외 현지 녹음실과 한국의 녹음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직접 결과물들을 들어가며 작업했고,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녹음을 진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승철은 음원 중심으로 음악 시장이 재편돼 앨범이 사라지는 시대에도 정규 앨범을 고수해 온 몇 안 되는 가수이다. 그런 그도 시장의 한계를 느낀 듯 다음 앨범은 다른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운을 띄웠다.

이승철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 뮤지션이어도 현재 음원 차트는 이들을 아이돌들과 똑같이 줄 세우기로 평가하기 때문에 주목을 받기 쉽지 않다”며 “보이는 것만 보이고 들리는 것만 들려 시장이 닫힌 느낌이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정성을 들이는 것에 비해 앨범의 수록곡들이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번 앨범이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다음에는 각 계절마다 3곡 씩 담아 발표하는 시즌 앨범을 구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 또 다른 30년을 꿈꾸는 거장= 이승철은 지난 3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3가지로 △63빌딩에서 벌였던 부활의 첫 콘서트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알린 곡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를 발표한 당시 △잠실주경기장에서 벌였던 데뷔 25주년 콘서트를 꼽았다.

이승철은 “나는 밴드 출신 보컬이 솔로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깼던 첫 사례”라며 “지금도 나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다음으로 오래된 개인 밴드(황제)를 가지고 있고 록으로 편곡해 콘서트를 꾸민다”고 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개인사에 굴곡이 많았던 만큼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네버 엔딩 스토리’ 등 재기 곡들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며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한 시절에도 전국을 돌며 콘서트를 벌였고, 그 시간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게 만들어줬다”고 회상했다.

이승철은 오는 9월 5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데뷔 30주년 기념 전국 투어를 시작한다. 이에 앞서 그는 오는 6월부터 미국, 중국, 호주 등을 도는 생애 첫 월드투어를 벌인다.

이승철은 “올해 50세가 됐는데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또 데뷔 30주년을 맞이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매순간을 감사하면서 살아가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며 “기회가 된다면 꼭 북한에서 모란봉악단을 지휘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고, 또 동요 앨범과 복음성가(CCM) 앨범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