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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키드 솔루션스 “과거의 록 그대로 재현하는 건 의미 없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8. 16.

위키드 솔루션스는 정말 오래 기다렸는데,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멋진 앨범이었다.

그렇다면 당장 만나 봐야 하지 않겠나?


이 인터뷰는 헤럴드경제 8월 17일자 25면 톱에도 실린다.


위키드 솔루션스 “과거의 록 그대로 재현하는 건 의미 없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만화 ‘데스노트’에 등장하는 악마 ‘류크’를 닮은 앨범 재킷만 보고 지레 놀랄 필요는 없다. 밴드 멤버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잊는 것이 앨범 감상에 도움이 된다. 생소한 밴드 이름과는 달리, 멤버들 모두 한국 헤비니스 신의 살아있는 역사들이니 말이다. 모든 선입견을 걷어내면 멤버들의 신체 나이와 관계없이 젊은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밴드 위키드 솔루션스는 앨범 발매 전까지 소문만 무성했던 프로젝트이다. 어느덧 데뷔 30년을 바라보는 밴드 블랙신드롬의 보컬리스트 박영철, 20년 넘게 밴드 디아블로를 지키고 있는 기타리스트 김수한, 밴드 크라티아의 리듬 파트를 책임졌던 베이시스트 김인철과 드러머 오일정 등 그야말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 모였는데 앨범 발매 소식은 깜깜이었으니 말이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내용물이 알차다. 위키드 솔루션스를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교동 프리즘홀에서 만나 첫 앨범 ‘이모털 인비테이션(Immortal Invitation)’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밴드 위키드 솔루션스가 첫 정규 앨범 ‘이모털 인비테이션(Immortal Invitation)’을 발매했다. 왼쪽부터 김인철(베이스), 박영철(보컬), 오일정(드럼), 김수한(기타). [사진 제공=올드레코드]


박영철은 “해가 갈수록 점점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라 조금이라도 몸이 따라줄 때 하나라도 더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며 “멤버들 모두 자신의 밴드에서 오래 활동해왔는데,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함께 뭉쳤다”고 앨범 발매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앨범에는 티베트 고승 저음을 이용한 압도적인 스케일로 멤버들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이모탈 인비테이션’을 시작으로 록에 인생을 바친 멤버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서정적인 멜로디로 담아낸 타이틀곡 ‘앤서(Answer)’, 질주감이 돋보이는 ‘더 체이서(The Chaser)’와 ‘메이크 어 바우(Make A Vow)’ 등 9곡이 담겨 있다. 

멤버들이 과거 자신의 밴드에서 들려줬던 ‘달리는’ 헤비메탈을 생각했다면 이 앨범은 꽤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더 즐겁다. 디아블로에서 기관총 소리를 닮은 육중한 기타 연주를 들려줬던 김수한은 위키드 솔루션스에선 날렵하면서도 탄력적인 연주로 밴드의 색깔을 만든다. 서로 같은 밴드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김인철과 오일정은 곡마다 다채로운 리듬 연주를 들려주며 곡에 생기를 더한다. 곡들의 길이가 전반적으로 짧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들리지 않은 이유는 그루브가 살아있는 리듬 연주 덕분이다. 겹겹이 쌓은 코러스는 곡이 이질감 없이 귓가에 스며들게 만드는 윤활유이다. 그 위에 실린 한국 대표 파워보컬 박영철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이 서있다. 위키드 솔루션스는 그 흔한 샘플링이나 신시사이저를 배제한 채 오직 4명의 멤버만으로 이 사운드를 구축했다.

박영철은 “그동안 해온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어떤 레퍼런스(참고 자료) 없이 각자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며 “과거에는 세계 시장을 노리려면 영어로 노래를 불러야한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영어 가사를 많이 썼는데, 독일 출신 세계적인 밴드 람스타인를 비롯해 많은 밴드들이 자국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꿔 한글 가사로 대부분 채웠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은 김인철은 “멤버들 모두 관성에서 벗어나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음악을 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며 “각자의 밴드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연주자들이 ‘따로 또 같이’ 형태로 모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로 다른 밴드의 멤버들이 모여 한 팀을 이룬 만큼 앨범 제작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일정을 맞춰 녹음하는 일이었다. 위키드 솔루션스는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녹음에만 무려 1년여의 시간을 투자하는 강수를 뒀다. 단 며칠 만에 녹음을 마치는 앨범이 부지기수인 현실 속에서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멤버들은 프로듀서 김인철의 지휘 아래 

김인철은 “70~80년대 명반들이 명반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최고의 장비로 오랜 시간 동안 정성 들여 녹음했기 때문이다. 녹음에 들인 시간이 질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들였다”며 “한국에선 프로듀서가 앞으로 나서 앨범 제작을 지휘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 과정을 이의 없이 따라준 멤버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박영철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끓여낸 사골과 사골 컵라면의 맛이 같을 순 없다”며 “명품 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으로 녹음에 집중했다. 고민이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결과물로 나왔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영철은 “오랜 세월 동안 음악을 만들도 공연을 벌여왔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우리는 생소한 존재”라며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젊은 세대와 시장에도 통하는 앨범을 만들었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으니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