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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수’가 유쾌하게 풀어낸 웃픈 ‘사축’들의 자화상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11. 13.

나는 운이 좋아 많은 재주를 가진 동생들이 꽤 있는데, 강백수도 그중 하나이다.

책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일독했다. 이토록 웃플줄이야! 하하하~

이 녀석 때문에 지금 한국사회에 '사축'이란 표현이 더 화두로 떠오른 것 같다.

최근에는 토니안 사장한테 영입돼 인디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졌다.

출세하거라!


p.s. 그리고 다음에는 꼭 시집을 내서 문학면에 인터뷰를 올리거라.



이 인터뷰는 헤럴드경제 11월 16일자 29면 톱에도 실린다.




‘백수’가 유쾌하게 풀어낸 웃픈 ‘사축’들의 자화상

[HOOC=정진영 기자] ‘사축(社畜)’이란 다소 낯선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당신은 온라인 환경에 밝은 직장인일 것이며, 현재의 삶에 그리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사축’이란 단어의 원산지는 일본이다. 사생활도 없이 회사일에만 매달리는 기성세대를 조롱하는 표현이었던 ‘사축’은 언젠가부터 일본 내 직장인들의 답답한 현실을 자학하는 표현으로 전용돼 쓰이고 있다. 

‘사축’은 일본에서 온라인으로 유행하던 ‘사축동화’가 올 초 누리꾼들에 의해 번역 소개된 뒤,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화두로 떠올랐다. “소녀는 성냥을 팔았습니다/월급은 세전 130만원/월 200시간이 넘는 수당 없는 추가 근무/영하를 넘나드는 가혹한 노동 환경/소녀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성냥을 피웠습니다/회사는 상품을 무단 사용한 소녀를 고소했습니다”. 박봉, 장시간의 노동, 불안한 지위에 시달리던 직장인들은 이에 격하게 공감하며 새롭게 변주한 이야기들을 온라인에 쏟아내고 있다. 

시인 겸 싱어송라이터인 강백수는 주변의 ‘사축’들과 수시로 어울리며 이야기들을 채집했다. 그 이야기들은 에세이 ‘사축일기(꼼지락)’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사축일기’를 출간한 강백수를 지난 4일 서울 후암동의 한 고기집에서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들었다.

시인 겸 싱어송라이터 강백수가 에세이 `사축일기`를 출간한데 이어 디지털 싱글 `남자사람`을 발표했다. [사진 제공=강백수]


강백수는 “‘사축’이란 단어는 직장인이 아닌 사람들이 직장인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단어가 아니라, 직장인들이 스스로를 호명하는 단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음악을 하고 글을 쓰고 있지만 만나는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이어서, 내 음악과 글을 소비해주는 대중과 더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절절하다. “가시나야, 솔직히 말해보자. 내가 직장 없이 논다고 했어도 네가 나랑 소개팅 했을까?……그런데 이제 와서 일밖에 모르는 남자는 싫다고 헤어지자고(41쪽 ‘우짜란 말이고’ 중)” 같은 대목 앞에서 쓴웃음을 피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출근을 앞두고 있다면 “5년 전 나의 장래 희망은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나의 장래희망은 출근을 안 하는 것이다(118쪽 ‘5년 전’ 중)” 같은 문장이 가슴에 사무칠 것이다. 하지만 강백수는 이처럼 절절한 이야기들을 다듬어 ‘웃프게’ 포장할 줄 안다. 이 책이 부담스럽기보다 유쾌하게 읽히는 이유이다.

강백수는 “‘사축’인 친구를 불러 맥주 한 잔을 사 주고 ‘회사에서 거지같았던 일 없었어?’ 혹은 ‘회사에서 제일 재수 없는 인간 얘기 좀 해 봐’라고 말하면 그들은 며칠 굶은 사람이 잔칫상을 만난 것처럼 숨도 안 쉬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고 소재 발굴 배경을 설명하며 “모두들 푸념하고 싶은 사연은 많지만 그럴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제공해 준 ‘사축’들이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어 술값이 많이 들어가게 생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강백수도 한때 ‘사축’이었다. 그는 1년 동안 종합반 입시 학원에서 적지 않은 월급을 받는 전임강사로 근무한 바 있다.

‘사축’이 아니어서 행복하느냐는 질문에 강백수는 “너무 더디게 오는 퇴근시간과 너무 빠르게 오는 출근시간이 괴로웠기 때문에 사표를 썼다”며 “고정수입이 없다보니 돈이 있을 땐 직장인보다 행복하고 돈이 없을 땐 직장인보다 불행하다. 친구들과 나는 서로 부러움과 안도감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고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인디 신에서 활동해 왔던 강백수는 최근 그룹 에이치오티(H.O.T)의 멤버였던 토니 안이 대표로 있는 티엔네이션엔터테인먼트에 영입돼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 12일 새 소속사에 둥지를 튼 뒤 처음으로 싱글 ‘남자사람’을 발표했다. 그룹 젝스키스 출신 김재덕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짝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남자의 솔직한 마음을 다소 노골적인 가사로 풀어낸 이 곡은 KBS 가요심의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강백수는 “토니안과 김재덕이 먼저 내 공연을 보러와 음악적인 조언을 해주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청소년 시절 동경했던 둘의 제안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며 “‘짝사랑’하면 달달한 설렘을 떠올리지만 사실 오래 짝사랑하고 있는 당사자의 마음은 지긋지긋하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백수는 지난 2008년 계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했지만, 아직 시집 단행본을 출간하진 않은 상황이다. 시집보다 에세이를 먼저 출간한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작품은 많지만 더 좋은 작품을 새롭게 써서 채워 넣으려고 욕심을 내다보니 시집을 엮는 작업이 미뤄졌다”며 “다음에 출간하는 책은 반드시 시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