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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41. ‘애기똥풀’을 알고 만날 내년 봄은 더 따뜻하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11. 19.

더 이상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 없어 <식물왕>으로 어떤 꽃을 쓸까 고민하던 중, 이른 아침 출근길에 애기똥풀 꽃을 발견했다.

봄, 여름, 가을에 걸쳐 철을 모르고 꽃을 피우는 녀석이 겨울을 앞둔 시기에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철모르고 피어난 녀석이 기특해서 이번 주에는 애기똥풀을 택했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11월 20일자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겨울을 앞두고 황량해진 거리에 흐린 하늘과 비까지 더해지니 풍경이 더욱 스산해졌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꽃을 피우는 않는 땅은 한 해의 끝자락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지난 2월부터 그 계절에 맞춰 피어나는 꽃들을 주제로 연재돼 온 ‘식물왕 정진영’도 자연스럽게 변화의 계절을 맞았습니다. 겨울을 건너가는 동안 ‘식물왕 정진영’은 지난 계절에 다루지 못했던 꽃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우선 기자는 이른 아침에 출근하면서 우연히 만난 꽃으로 겨울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뎌 볼까합니다.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철을 모르고 앙증맞은 노란 꽃을 피워낸 귀여운 녀석. 바로 애기똥풀입니다.

서울 창전동 와우산에서 촬영한 애기똥풀.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애기똥풀은 양귀비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혹은 두해살이)로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몽골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흔히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애기똥풀은 보통 5월에서 10월 사이에 노란 꽃을 피우는데, 그보다 이른 때나 늦은 때에도 꽃잎을 펼치곤 합니다. 이 때문에 애기똥풀은 봄, 여름, 가을에 걸쳐 길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들꽃이죠. 여러분이 도시의 길가에서 보신 노란 꽃들 중 절반 이상은 애기똥풀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정도로 애기똥풀은 우리 주변에서 흔한 편입니다.

애기똥풀이란 꽃의 이름은 줄기에 상처를 내면 새어 나오는 노란 즙에서 유래합니다. 귀여운 꽃의 모양과 친근한 이름만 믿고 함부로 이 ‘똥’을 만지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똥’이 피부에 발진을 일으키기도 하거든요. 애기똥풀은 잘못 먹으면 구토, 설사, 신경마비 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초식동물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애기똥풀을 독초라고 피할 이유는 없습니다. 애기똥풀은 한방에서 백굴채(白屈菜)라고 불리고 전초를 약으로 씁니다. 애기똥풀에 함유된 켈리도닌(Chelidonine), 켈레리스린(Chelerythrine) 등의 알칼로이드(질소를 함유하는 염기성 유기화합물로, 식물계에 널리 분포하며 동물에 대해서 매우 특이하면서도 강한 생리작용을 나타낸다) 성분들은 진정 및 진통 작용을 한다는 군요. 또한 애기똥풀은 강력한 살균효과를 지니고 있어 오래전부터 민간에선 피부병, 눈병, 무좀 등에 약으로 써왔다고 합니다. 잘 쓰면 약이 되고 과하면 독이 되는 애기똥풀. 약과 독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서울 창전동 와우산에서 촬영한 애기똥풀.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보아주는 이나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애기똥풀은 해마다 길가에서 무리지어 작고 노란 화등(花燈)을 밝힙니다. 사람들이 잡초라고 뽑아버려도, 애기똥풀은 어김없이 내년이면 그 자리에 다시 피어나 생글생글 웃고 있을 겁니다. 내년 봄에 애기똥풀을 발견하시거든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눠보시죠. 애기똥풀을 알고 만나는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 따뜻해지는 계절일 겁니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얼마나 서운했을까요”(안도현 ‘애기똥풀’)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