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면 마감과 식물왕 마감이 금요일에 겹쳐 식물왕을 늘 목요일에 미리 마감하는데, 술자리가 있어서 쓰질 못했다.
만취 직전의 상태로 집으로 돌아와 사경을 헤매며 겨우 식물왕을 썼다.
이렇게 힘겹게 기사를 써보기는 정말 처음이다. 죽겠네...
제대로 썼는지 걱정도 되고.. 상태가 메롱이라 퇴고가 안 된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11월 27일자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느닷없이 겨울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첫눈과 더불어 한파가 몰아쳤고, 기온은 영하권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길가의 화단에서 가을의 끝을 붙들고 있던 관목들의 검푸른 잎사귀 위로 흰눈이 쌓였습니다. 메마른 가지의 겨드랑이 사이에 피어난 눈꽃은 새삼 올 한 해와 결별해야 할 시간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보내셨나요? 시작하는 듯 끝이 나버리는 한 해의 달력은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에 지고 마는 나팔꽃의 생처럼 짧은 것 같아 덧없게 느껴지곤 합니다.
나팔꽃은 개나리, 무궁화, 장미, 해바라기 등과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구별하는 몇 안 되는 꽃입니다. 아마도 독특한 꽃의 모양을 직관적으로 가리키는 이름 덕분이겠죠.
나팔꽃은 인도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는 지역이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세기 말에 간행된 의학서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등 고문헌들이 ‘견우(牽牛)’라는 이름으로 나팔꽃을 기록한 것을 미뤄볼 때, 나팔꽃은 이 땅에 귀화한 지 상당히 오래된 식물인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는 현상의 뒤를 따르기 마련이니, 나팔꽃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시기는 기록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덩굴식물인 나팔꽃은 왼쪽으로 물체를 휘감으며 자라나고, 주로 7~8월께 꽃을 피웁니다. 꽃의 색깔은 푸른색을 띤 자주색, 흰색, 붉은색 등 다채로운 편이죠. 나팔꽃이 사람들에게 아련한 정서를 각인시킨 이유는 꽃의 짧은 수명 때문일 것입니다. 새벽에 봉오리를 터트리는 나팔꽃은 아침에 활짝 꽃을 피운 뒤 오후에 시들어 꽃잎을 떨어뜨립니다. 나팔꽃의 수명은 고작 2~3일에 불과하죠. 여기에 가수 임주리의 히트곡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가사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는 아련한 정서에 슬픔까지 더했죠. 이 때문인지 나팔꽃의 꽃말 중 하나는 ‘덧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나팔꽃의 짧은 생은 결코 아련하고 슬프게만 느껴지진 않습니다. 나팔꽃은 앞서 피어난 꽃들이 시들기 무섭게 또 다른 꽃을 피우기 때문이죠. 나팔꽃은 그야말로 하루를 1년 같이 숨 가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나팔꽃은 매일 새롭습니다. 나팔꽃을 뜻하는 영어 단어 ‘모닝 글로리(MorningGlory)’는 ‘아침의 영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잠시 세상에 머물다가 가는 여정이지만, 나팔꽃은 ‘아침의 영광’을 위해 여름이면 매일 밤 치열하게 새로운 꽃봉오리를 준비하느라 한 눈을 팔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영부영 보낸 1년이 그런 나팔꽃의 짧은 하루보다 우월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나팔꽃의 또 다른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치열하게 보낸 시간의 무게는 그렇지 않은 시간의 무게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 겁니다. ‘덧없는 사랑’과 ‘기쁜 소식’. 여러분은 내년 이맘 때 나팔꽃의 어떤 꽃말로 한 해의 마지막이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123@heraldcorp.com
여러분은 올 한 해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보내셨나요? 시작하는 듯 끝이 나버리는 한 해의 달력은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오후에 지고 마는 나팔꽃의 생처럼 짧은 것 같아 덧없게 느껴지곤 합니다.
나팔꽃은 개나리, 무궁화, 장미, 해바라기 등과 더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구별하는 몇 안 되는 꽃입니다. 아마도 독특한 꽃의 모양을 직관적으로 가리키는 이름 덕분이겠죠.
나팔꽃은 인도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는 지역이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세기 말에 간행된 의학서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등 고문헌들이 ‘견우(牽牛)’라는 이름으로 나팔꽃을 기록한 것을 미뤄볼 때, 나팔꽃은 이 땅에 귀화한 지 상당히 오래된 식물인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는 현상의 뒤를 따르기 마련이니, 나팔꽃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시기는 기록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덩굴식물인 나팔꽃은 왼쪽으로 물체를 휘감으며 자라나고, 주로 7~8월께 꽃을 피웁니다. 꽃의 색깔은 푸른색을 띤 자주색, 흰색, 붉은색 등 다채로운 편이죠. 나팔꽃이 사람들에게 아련한 정서를 각인시킨 이유는 꽃의 짧은 수명 때문일 것입니다. 새벽에 봉오리를 터트리는 나팔꽃은 아침에 활짝 꽃을 피운 뒤 오후에 시들어 꽃잎을 떨어뜨립니다. 나팔꽃의 수명은 고작 2~3일에 불과하죠. 여기에 가수 임주리의 히트곡 ‘립스틱 짙게 바르고’의 가사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는 아련한 정서에 슬픔까지 더했죠. 이 때문인지 나팔꽃의 꽃말 중 하나는 ‘덧없는 사랑’입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촬영한 나팔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그러나 나팔꽃의 짧은 생은 결코 아련하고 슬프게만 느껴지진 않습니다. 나팔꽃은 앞서 피어난 꽃들이 시들기 무섭게 또 다른 꽃을 피우기 때문이죠. 나팔꽃은 그야말로 하루를 1년 같이 숨 가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나팔꽃은 매일 새롭습니다. 나팔꽃을 뜻하는 영어 단어 ‘모닝 글로리(MorningGlory)’는 ‘아침의 영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잠시 세상에 머물다가 가는 여정이지만, 나팔꽃은 ‘아침의 영광’을 위해 여름이면 매일 밤 치열하게 새로운 꽃봉오리를 준비하느라 한 눈을 팔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영부영 보낸 1년이 그런 나팔꽃의 짧은 하루보다 우월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나팔꽃의 또 다른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치열하게 보낸 시간의 무게는 그렇지 않은 시간의 무게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 겁니다. ‘덧없는 사랑’과 ‘기쁜 소식’. 여러분은 내년 이맘 때 나팔꽃의 어떤 꽃말로 한 해의 마지막이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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