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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주원 “익숙함 속에서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12. 4.

진작 만났어야 할 형님인데, 이제야 만났다.

사실 이 형님과 술자리 등 사석에서 몇 번 만나 말을 붙여본 일은 있지만 길게 이야기를 나눈 건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다.

술자리에선 꽤나 까다롭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렇게 유쾌한 사람이 또 없다.

또 이 형님이 나와 친한 싱어송라이터인 조커 형이랑 절친인 터라 이런저런 썰을 풀기도 참 편했다.  

형님, 앞으로 저와 더 친하게 지내시죠.


이 인터뷰는 헤럴드경제 12월 7일자 29면 톱에도 실린다.




박주원 “익숙함 속에서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HOOC=정진영 기자] 연주자를 가수의 반주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팽배한 한국에서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은 매우 독특한 존재이다. 인기 가수들조차 수익성을 이유로 앨범 발매를 꺼리는 현실 속에서, 그는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앨범을 꾸준히 발표해 온 희귀종이다. 탁월한 연주로 ‘젊은 거장’이란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낸 그는 한국 음악 시장에선 드물게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확보했다.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연주자인 셈이다. 

박주원이 조금 독특한 앨범으로 돌아왔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영화 음악들을 집시 스타일로 편곡하고 연주한 앨범 ‘집시시네마’를 발표한 박주원을 지난달 26일 헤럴드경제 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새 앨범 ‘집시시네마’를 발표했다. [사진제공=JNH뮤직]


박주원은 “어린 시절에 클래식 기타를 잡으며 기타 연주를 시작했는데, 지루한 연습에 흥미를 불러일으킨 곡들이 바로 영화 음악이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이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며 “당시 지금은 절판된 ‘영화음악 대전집’을 보며 기타를 연습했는데, 만약 영화 음악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기타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앨범을 발표한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인 ‘러브 스토리’의 ‘테마 프롬 러브 스토리(Theme From Love Story)’를 비롯해 박주원이 OST에 참여했던 영화 ‘러브픽션’의 ‘스윗 아모르(Sweet Amore)’, ‘닥터 지바고’의 ‘라라스 테마(Lara’s Theme)’, ‘대부’의 ‘스피크 소프트리 러브(Speak Softly Love)’, ‘인생은 아름다워’의 ‘라 비타 에 벨라(La Vita E Bella)’,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칵아이스 송(Cockeye’s Song)’, ‘첨밀밀’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등 10곡이 담겨 있다.

박주원은 “‘러브스토리’는 영화 음악으로 앨범을 만들면 반드시 연주하려고 마음먹었던 곡이어서 어렵지 않게 타이틀곡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며 “허밍으로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스노 프라릭(Snow Frolic)’을 가수 이소라의 허밍을 담아 수록하고 싶었는데, 이를 실현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고 전했다.


유명한 원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앨범인 만큼, 원곡과 비교해 달라진 점을 발견하는 일도 즐겁다. 3박자 왈츠 리듬을 4박자 플라멩코로 변화를 준 ‘라라스 테마’, 4박자를 3박자로 뒤집은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는 소소한 반전이다. 경쾌한 룸바 리듬을 기초로 퓨전재즈 풍의 변화무쌍한 편곡을 자랑하는 ‘월량대표아적심’, 전제덕의 하모니카 연주와 기타가 격렬하게 대결을 벌이는 ‘제임스 본드 테마(James Bond Theme)’는 원곡 이상의 매력적인 변신으로 탄성을 자아낸다. 


앨범에 힘을 보탠 뮤지션들과의 합도 매력적이다. 이희경의 비브라폰 연주는 ‘테마 프롬 러브 스토리’에 새로운 맛을 더하고, 최백호는 ‘스피크 소프트리 러브’에 우수 어린 목소리를 실어 원곡 이상의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최백호가 정식으로 팝을 커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칵아이스 송’은 고상지의 반도네온 연주와 전자음으로 만든 리듬이 원곡의 팬플룻을 대신한 기타 연주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스윗 아모르’에 실린 싱어송라이터 프롬의 재즈 풍의 보컬을 시도한 그의 새로운 매력을 이끌어내는 곡이다.

박주원은 “수록곡 모두 대중에게 익숙한 멜로디들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곡들이기 때문에 너무 힘을 주거나 꾸미지 말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다”며 “대중의 추억을 훼손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로움을 드러내고자 멜로디는 그대로 살리되 리듬과 편곡에 다양한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9년 첫 정규앨범 ‘집시의 시작’으로 데뷔한 박주원은 2011년 2집 ‘슬픔의 피에스타’, 2013년 3집 ‘캡틴’을 내놓으며 집시 음악을 알려왔다. 그는 지난 2010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 오버’ 부문을 수상한데 이어 2010ㆍ2011년 2년 연속으로 재즈 전문지 ‘재즈피플’에서 ‘리더스 폴 최우수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밖에도 그는 가수 아이유의 ‘을의 연애’를 작곡하고 대학교 실용음악과 강단에 오르는 등 다방면에 걸쳐 활약 중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 인식은 냉정했다.
 
박주원은 “한국에서 가수가 아닌 연주자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부족하고, 내 처지 역시 다른 연주자들보다 조금 나을지 몰라도 불안정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지금 나는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사각지대에 위치한 독특한 존재인데, 그 애매한 자리에서 더 발버둥 치며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박주원은 오는 12월 10~11일 서울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전제덕과 함께 콘서트를 벌인다. 집시 기타 연주와 스캣 보컬, 재즈 하모니카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매력적인 무대가 펼쳐질 전망이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