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이 카테고리에 인터뷰 기사를 포스팅한다.
산업부로 와서 음악 쪽 인터뷰를 하는 방법은 역시 악기 업체를 도는 것이겠지.
인터뷰에 응해준 태영이 형님께 감사를 표하며...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가수 이승철, 김종서, 기타리스트 박창곤, 타미 김 등. 이들 정상급 가수와 연주자의 손에 들린 기타에는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다. 이들이 애용하는 기타에는 펜더(Fender), 깁슨(Gibson) 등 해외 유명 브랜드 대신 국산 브랜드 스윙(Swing)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스윙악기의 일렉트릭 기타는 깊은 울림과 연주하기 편안한 디자인, 해외 유명 브랜드 기타에서도 보기 드문 깔끔한 마감 처리로 명성을 쌓아왔다.
지난 17일 기자가 찾아간 경기도 파주시 부곡리 스윙악기 공장은 마치 거대한 목공소를 방불케 했다. 공장 안에 쌓인 목재를 가리킨 김태영 스윙악기 대표는 “기타의 울림은 좋은 목재로부터 출발한다. 5년 동안 건조시킨 저 목재로 내년에는 정말 멋진 기타를 만들어 볼 생각”이라며 웃어보였다.
김 대표는 “초기에는 현지 바이어들이 ‘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Korea) 제품이 100달러가 넘냐’며 외면했지만, 이젠 품질로 인정받아 해외 시장에서 1000달러 이상의 고가에 팔리고 있다”며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의 매출액 비중도 5대 5일 정도로, 이제 해외시장은 국내 시장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한국 헤비메탈 신을 풍미했던 밴드 ‘제로지(Zero-G)’의 리드 기타리스트 출신이다. 정상급 연주자였던 그의 남다른 이력은 기타 제작에 섬세함을 더했다. 특히 깁슨 등 세계적인 기타 업체 제품들의 단점으로 꼽히는 도색의 불균형 등을 개선한 마감 처리와 픽업(현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장치), 브릿지(기타의 몸체에서 현을 지지하는 부품) 등 중요 부품들의 자체 개발은 김 대표가 연주자가 아니었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부분이다.
김 대표는 “스윙악기의 기타는 넥(기타의 목)이 손에 착 감겨 연주하기 편하다는 호평을 많이 받는데, 이 같은 편안함은 0.1㎜ 두께 차이가 결정하고, 내가 연주가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요소”라며 “예나 지금이나 내가 직접 연주하고 싶은 기타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품질을 자신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악기 산업은 사양 산업에 속한다. 특히 전자음악의 대두에 따른 전자악기의 발달은 기타와 같은 기존 악기들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 한때 국내 일렉트릭 기타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점유율에는 큰 변동이 없지만, 전체적인 악기 시장의 규모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한국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 국내 악기(악기및 그 부분품과 부속품) 수출액은 1억1689만 달러이다. 사상 최대 수출 실적(3억6381만 달러)을 냈던 지난 1995년에 비해 불과 3분의1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더 좋은 기타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김 대표는 “채산성이 떨어진 지 오래이고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 뻔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연주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기타를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파주=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지난 17일 기자가 찾아간 경기도 파주시 부곡리 스윙악기 공장은 마치 거대한 목공소를 방불케 했다. 공장 안에 쌓인 목재를 가리킨 김태영 스윙악기 대표는 “기타의 울림은 좋은 목재로부터 출발한다. 5년 동안 건조시킨 저 목재로 내년에는 정말 멋진 기타를 만들어 볼 생각”이라며 웃어보였다.
김 대표는 지난 2001년 스윙악기를 창업해 올해로 15년 째 기타 생산 외길을 걸어왔다. 김 대표는 주로 해외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성장해 온 한국의 기타 제작 시장에서 토종 브랜드로 해외시장을 개척한 주역이다. 스윙악기는 창업 초기부터 매년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국제악기박람회(NAMM)에 자사의 제품을 출품해오며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스윙악기는 지난 2009년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에 3960㎡ 규모의 공장을 세워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 기타업계에서 자체 브랜드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해외에 공장을 세운 것은 스윙악기가 최초였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선 스윙악기의 브랜드를 그대로 도용한 ‘짝퉁’ 기타까지 널리 퍼져 스윙악기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을 정도로, 아시아 시장에서 스윙악기의 인지도는 높은 편이다.
김 대표는 “초기에는 현지 바이어들이 ‘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Korea) 제품이 100달러가 넘냐’며 외면했지만, 이젠 품질로 인정받아 해외 시장에서 1000달러 이상의 고가에 팔리고 있다”며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의 매출액 비중도 5대 5일 정도로, 이제 해외시장은 국내 시장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한국 헤비메탈 신을 풍미했던 밴드 ‘제로지(Zero-G)’의 리드 기타리스트 출신이다. 정상급 연주자였던 그의 남다른 이력은 기타 제작에 섬세함을 더했다. 특히 깁슨 등 세계적인 기타 업체 제품들의 단점으로 꼽히는 도색의 불균형 등을 개선한 마감 처리와 픽업(현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장치), 브릿지(기타의 몸체에서 현을 지지하는 부품) 등 중요 부품들의 자체 개발은 김 대표가 연주자가 아니었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부분이다.
김 대표는 “스윙악기의 기타는 넥(기타의 목)이 손에 착 감겨 연주하기 편하다는 호평을 많이 받는데, 이 같은 편안함은 0.1㎜ 두께 차이가 결정하고, 내가 연주가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요소”라며 “예나 지금이나 내가 직접 연주하고 싶은 기타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품질을 자신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악기 산업은 사양 산업에 속한다. 특히 전자음악의 대두에 따른 전자악기의 발달은 기타와 같은 기존 악기들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 한때 국내 일렉트릭 기타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점유율에는 큰 변동이 없지만, 전체적인 악기 시장의 규모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한국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 국내 악기(악기및 그 부분품과 부속품) 수출액은 1억1689만 달러이다. 사상 최대 수출 실적(3억6381만 달러)을 냈던 지난 1995년에 비해 불과 3분의1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더 좋은 기타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김 대표는 “채산성이 떨어진 지 오래이고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 뻔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연주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기타를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파주=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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