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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46. 우연한 만남으로 탄생한 ‘유채’가 빚어낸 화사한 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 28.

얼마전 산업부 회식자리에 잠시 합석했다 떠나신 함영훈 부장께서 내게 사진 몇 장을 보여주셨다.

제주도 출장 중 촬영하셨다는 사진에 담긴 풍경은 놀랍게도 완연한 봄이었다.

폭설이 쏟아졌지만, 봄은 분명히 남쪽 끝에서 북상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이번주 <식물왕> 아이템은 유채꽃으로 낙찰됐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1월 29일자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시베리아 뺨치는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 주말, 제주에선 32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져 하늘길이 막혔습니다. 무려 6만여 뭍사람들의 발이 묶인 제주공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죠. 마침 제주에 있던 기자의 지인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생중계한 현지의 풍경은 낭만적이기 보다 살벌했습니다. 마치 영원히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영화 ‘설국열차’ 속 살풍경처럼 말이죠.

모두가 술잔을 사이에 두고 한파의 대단함을 이야기하던 며칠 전 저녁, 제주로 출장을 떠났다가 폭설을 피해 무사히 돌아온 선배가 기자에게 사진 몇 장을 보여줬습니다. 이 선배의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 속 제주의 1월 풍경은 놀랍게도 봄이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들판을 가득 덮은 노란 물결, 바로 유채꽃이었습니다. 폭설은 잠시 뿐, 대한민국의 최남단에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봄이 북상하고 있었습니다. 삭풍에 움츠러 들었던 몸과 마음이 사진 한 장에 풀리더군요.


대전 문화동의 한 골목에서 촬영한 유채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유채는 중국 원산의 두해살이풀로 매년 3~4월께 꽃을 피웁니다. 유채는 빠르게 자라고 추위와 습기에 강해 매년 봄이면 전국 지천에서 눈에 띕니다. 유채는 이래저래 쓸모가 많아 활발히 재배되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유채의 종자는 약 40% 내외의 지방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유채의 종자에서 짜낸 기름이 바로 채종유이죠. 또한 콩기름만큼 흔하게 식용유로 쓰이는 카놀라유는 유채의 개량종으로 만든 기름입니다. 부신백질이영양증 치료제로 유명한 로렌조 오일(Lorenzo’s Oil)은 올리브유에서 추출한 올레산과 채종유에서 추출한 에루크산을 각각 4대 1의 비율로 혼합해 만듭니다. 최근 들어 채종유는 바이오에너지의 원료로도 주목을 받고 있죠. 또한 꽃과 잎은 샐러드, 튀김 등으로 식용할 수 있으니 이만큼 우리에게 유용한 식물도 드물 겁니다.

사실 유채는 우연한 만남이 없었다면 세상에 없었을 식물입니다. 유채는 야생종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교잡으로 탄생한 식물이거든요.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낸 학자는 바로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입니다. 그는 일본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일본 농림성 농업시험장에서 육종 연구를 하다가 지난 1935년 배추, 양배추, 겨자 등 배추속 식물의 게놈 분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자연적으로도 교잡이 가능하다는 ‘종(種)의 합성’ 이론을 제안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씨 없는 수박’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대전 송촌동 정수사업소에서 촬영한 유채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유채의 꽃말은 ‘쾌활’입니다. 화사한 노란색 꽃과 참 잘 어울리는 꽃말입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다가올 봄에도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수많은 만남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배추와 양배추의 우연한 만남이 봄의 전령인 유채로 거듭났듯이, 새로운 계절 속에서 우리가 맺게 될 인연 또한 유채처럼 화사한 모습이길 기대해봅니다. 그렇다면 춥더라도 움직이는 게 우선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군요.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