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48. 우리는 생각보다 ‘할미꽃’에 대해 아는 게 없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3. 3.

남도에서 할미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뉴스로 들려왔다.

다들 잘 모르는 사실은 할미꽃은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야생화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한 가지!

할미꽃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름만 익숙할 뿐..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3월 4일자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여러분은 야생화하면 어떤 꽃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지난 2014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국립수목원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지목한 꽃은 민들레(157명)였습니다. 민들레는 워낙 주변에 흔한 꽃이니 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 듯합니다.

민들레에 이어 응답자들이 두 번째로 많이 지목한 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할미꽃(82명)입니다. 할미꽃은 민들레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죠. 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Pulsatilla Koreana)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한국 토산종 야생화입니다. 노인의 등처럼 구부러진 꽃대와 흰 머리카락 같은 솜털로 뒤덮인 채 고개를 숙인 자주색 꽃송이. 화사함과 거리를 둔 할미꽃의 모양새는 한민족의 소박한 정서와도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대전 중구 정생동의 한 야산 무덤가에서 촬영한 할미꽃. 대전=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할미꽃을 실제로 보신 일이 있나요? 이 질문에 쉽사리 답을 하실 분은 드물 것 같군요. 젊어서나 늙어서나 한평생 할머니 소리를 듣는 기구한 신세가 인상적인 꽃이지만, 실은 할미꽃은 그리 쉽게 우리 눈에 띄는 꽃이 아닙니다. 과거 들녘이나 논둑의 양지바른 곳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할미꽃은 이제 군락지가 아니면 따로 마주치기 어려운 꽃이 됐습니다. 익숙한 듯하지만 실은 꽤 낯선 꽃이죠. 도시가 과거를 지우며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는 동안, 할미꽃의 근거지였던 과거도 함께 사라져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날 군락지 외에 할미꽃을 발견하기 수월한 장소는 야산의 무덤가입니다. 꽃의 이름과 꽃이 피어난 장소의 관계가 왠지 모르게 기묘한 느낌을 주죠. 꽃말마저 ‘슬픈 추억’입니다. 할미꽃이 무덤가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이유는 사실 대단하지 않습니다. 무덤가에선 보통 벌초와 더불어 봉분에 그늘이 지지 않게 잡목 제거가 주기적으로 이뤄집니다. 따라서 무덤가는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는 할미꽃에게 가장 이상적인 장소입니다. 기자 역시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처음 할미꽃을 만났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할미꽃에 대해 모르는 사실 하나가 또 있습니다. 할미꽃은 복수초, 매화, 개나리 등과 더불어 ‘봄의 전령사’ 중 하나입니다. 마치 잠이 없는 노인들처럼 할미꽃은 봄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펴기 전에 먼저 꽃잎을 열어 봄을 알리죠. 할미꽃의 개화는 보통 3월 말부터 시작되지만, 따뜻한 남쪽에선 3월초나 2월말에도 할미꽃이 피어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남도의 곳곳으로부터 할미꽃의 개화 소식이 북상하고 있더군요. 할미꽃의 봄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부지런한 할미꽃의 뒤를 따라 들어와 새봄을 맞이해 보시죠. 그 굽은 등 주변에서 할미꽃을 마중 나온 수많은 새봄의 야생화들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