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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47. 봄의 ‘힙스터’는 ‘복수초’를 찾아 떠난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2. 25.

살갗에 닿는 공기는 여전히 겨울의 질감을 갖고 있지만, 숲에는 벌써 봄이 찾아왔다.

계절은 어느 한 순간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이맘때 봄은 겨울에 매일 조금씩 스며드는데, 우리 몸이 그 변화를 인식하는 데 무딘 것뿐이다.

변화를 체감하고 싶다면 숲으로 향하면 된다.

복수초를 직접 만나면 곧 봄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2월 26일자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여러분은 ‘힙스터(Hipster)’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1940년대 미국의 재즈광들을 가리키는 속어였던 ‘힙스터’는 최근 들어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대중의 흐름과는 거리를 두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힙스터’는 주로 인디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언급되더군요. ‘힙스터’들의 독특한 문화적 코드는 ‘힙하다’라는 정체불명의 수식어를 낳았죠. 이 수식어의 의미는 명확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개성적이면서도 세련됐다’ 정도로 풀이하면 크게 어긋나진 않을 듯합니다. 

서울 청량리동 홍릉수목원에서 촬영한 복수초.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그러나 ‘힙스터’들이 꼭 홍대 앞, 신사동 가로수길, 성수동, 이태원 경리단길 등 이른바 ‘성지’에만 출몰하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과 봄의 건널목에서 봄을 미리 ‘힙하게’ 느끼고 싶은 ‘힙스터’들은 ‘성지’에서 먼 곳으로 향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 먼저 피어난 봄꽃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힙하게’ 봄을 맞이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군요. 이맘 때 피어나는 복수초는 봄의 ‘힙스터’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요소 중 하나입니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생초로 2월 하순부터 남쪽에서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해 서서히 북상합니다. 복수초가 봄의 ‘힙스터’들에게 주목 받는 이유는 종종 눈을 뚫고 피어나는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때문입니다. 술잔을 닮은 노란 꽃이 흰 눈 위에서 색의 대비를 이루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복수초가 ‘얼음새꽃’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를 이해할만합니다.

복수초가 미리 펼쳐내는 봄은 생존전략의 결과물입니다. 이맘때면 복수초는 뿌리에 저장해 둔 녹말을 분해해 스스로 열을 발산합니다. 그 열은 주변에 쌓인 눈을 녹이고 언 땅을 풀어주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복수초의 꽃잎 주변은 영상 8도가량을 유지합니다. 또한 복수초는 한낮에만 꽃잎을 열어 최대한 볕을 모아 자신의 몸을 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꽃잎을 닫아 온기를 보전합니다. 이 같은 생태 때문에 복수초는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福壽)’는 의미를 담은 이름을 가지게 됐죠.

서울 청량리동 홍릉수목원에서 촬영한 복수초.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하지만 주의하세요. 복수초를 이름만 믿고 함부로 꺾거나 먹으면 곤란한 일이 발생하니까요. 복수초의 뿌리와 줄기에는 한방에서 강심제, 이뇨제 등으로 쓰이는 ‘아도니톡신(Adonitoxin)’ 성분이 들어있는데 과용하면 오심, 구토 등 중독 증상이 일어납니다. 복수초가 ‘영원한 행복’과 ‘슬픈 추억’이란 이중적인 꽃말을 가진 이유를 알 것도 같군요. 이 때문에 봄의 ‘힙스터’들은 카메라 렌즈에 꽃을 담는 수준 이상의 경계선을 넘지 않습니다. 

봄의 ‘힙스터’가 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전국 곳곳의 수목원으로부터 복수초 개화 소식이 들려오고 있더군요. 기자는 최근 서울 도심에서 멀지 않은 홍릉수목원에서 복수초뿐만 아니라 덤으로 풍년화도 만났습니다. ‘힙스터’ 노릇도 부지런해야 가능합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