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은 현행 사법시험 마지막 1차 시험날이었다.
사는 게 바쁘다보니 그걸 당일에 알았다.
나는 20대 말의 약 2년 동안을 사법시험을 공부한다며 신림동에서 보냈었다.
더 이상 공부를 할 돈도 없었고(돈이 있었어도 합격했을진 의문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가끔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아련하게 떠오르곤 한다.
물적으로나 심적으로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런가 보다.
또 그 시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내 소설 '도화촌기행'을 쓰지 못했겠지.
마지막 사법시험 1차 시험날의 신림동 고시촌 풍경이 궁금했다.
충동적으로 고시촌으로 향했다.
사진으로 그곳의 마지막 풍경을 담고 싶었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숙대입구역 근처에서 고시촌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501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바로 고시촌이다.
아... 이 익숙한 고시촌의 한남운수 차고지.
신림9동 녹두거리가 이곳에서 가깝다.
대로변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느낌이었다.
한때 저 학원에는 사법시험 1차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지금은 이름도 바뀌고 가르치는 과목도 다른 시험 중심으로 바뀐 것 같다.
고시생들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인 롯데리아.
이상하게 다들 여기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많이 했었다.
맛집으로 유명한 삐에스몽테 빵집.
아직도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한산한 녹두거리.
녹두거리의 대표적인 주점인 '동학'
여기에서 참 많이도 술을 마셨었다.
고시생들이라면 '동학' 문앞에 붙어있는 저 초상화를 모두 기억하겠지.
예전에 이집에서 야채곱창 포장해 고시원방으로 돌아와 혼자 소주를 까곤 했는데, 아직도 장사가 되는 모양이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고시촌 까지의 거리는 매우 멀다.
서울대입구란 역명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서울대입구역에서 5515번 버스를 타는 고시생들은 대부분 이 강원약국 앞에서 하차한다.
이 부근에서 고시촌의 모든 일상이 시작된다.
고시생들의 발이 되주는 5515번 버스.
5515번 버스는 5515A와 5515B 2개가 있는데, 아무거나 타도 상관없다.
종점 부근 주민들에게만 상관있는 노선이다.
예상보다 더 거리가 썰렁해서 놀랐다.
요즘에는 보기힘든 인형뽑기도 고시촌에선 많이 볼 수 있다.
한때 내가 이거 뽑기 도사였다.
역시 옛날 실력은 어디 안 간다 ㅋㅋㅋㅋ
이 인형은 이날 장미여관 중완이형 손에 들어갔다.
한산하기 짝이 없는 골목.
고시촌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문구점 중 하나이다.
여기에서 볼펜을 많이 구입했었다.
간판이름 때문에 괜히 더 먹고 싶어지는 집.
삼겹살김치구이백반이 아주 맛있는 집이다.
가격은 6000원. 가성비 쩐다.
한때 법서를 구입하러 자주 들락날락하던 다산서적.
이제 내년이면 이런 사시 1차 강좌 포스터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수험생들이 이 복사집에서 사법시험을 비롯해 다양한 시험의 수험표를 인쇄한다.
다산서적 앞에 비치된 나름 명물 커피자판기.
이 자판기에서 나오는 냉커피를 마셔보지 않은 고시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배합비율이 좋은지 몰라도 기가 막힌 맛을 낸다.
고시생들을 위한 무료 정보지 법률저널.
여기에도 1면에는 사법시험 소식이 보이지 않는다.
진짜 사시가 끝은 끝인가 보다.
애들보다는 고시생들의 쉼터인 놀이터공원.
이 셀프빨래방에서 빨래를 많이도 말렸었다.
고시촌 곳곳에는 생활용품들을 사고 팔수 있는 가게들이 있다.
고시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그릇씩 포장도 해줘서 자주 사먹었던 짜장면집.
이 원룸 반지하실(거의 지하실에 가까울 정도로 빛이 들어오지 않던)에서 1년 넘게 살았었다.
여기에서 살 때 어머니도 갑자기 돌아가시고, 연인도 떠나고, 시험이란 시험도 다 떨어지고...
아픈 기억이 많은 장소이다.
53회면 도대체 몇년 전이지?
수험 기간이 오래된 고시생들은 미신에 상당히 의존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렇게 합격자가 배출된 원룸이나 고시원을 일부러 골라 입주하는 고시생들도 적지 않다.
고시촌 임대시장이 저물어가는데, 신축을 하다니...
이건 좀...
모의고사부터 사법연수원 교재까지 없는 게 없었던 만능 복사집.
KFC 크리스피 치킨을 거의 100% 재현하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한 닭집이다.
이집 치킨 많이 사먹었었는데, 여전히 장사가 잘 되나 보다.
오호라 소극장도 생겼네?
진짜 진짜 한산했다.
고시촌 오프라인 서점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법문서적.
과거에는 매우 낡은 건물이 있었는데, 몇년전 그 자리에 삐까번쩍한 건물이 새로 올라왔다.
수석 합격자의 이름이 재미있어서 검색해봤는데 헐...
한양대 법대 동문이었다.
한양대가 배출한 유일무이한(앞으로 사시가 없어질 테니) 사법시험 수석합격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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