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필자로 만난 다섯 번째 인터뷰이는 사운드 엔지니어 그룹 '팀 엔지니어스'이다.
사운드 엔지니어들의 인지도는 음악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미미하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회의에서도 엔지니어들을 따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직 이야기만 나온 단계이다.
다음 시상식부터 엔지니어들이 한국대중음악상에도 선정위원 혹은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시상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꺼번에 모이기 힘든 멤버들이 인터뷰를 위해 모두 자리를 함께 해줘 고마웠다.
인터뷰 원문 링크는 http://wp.me/p5I7Qx-2kN이다.
팀 엔지니어스 “세상에 음악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영원할 것”
우리가 듣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우선 작사와 작곡이 이뤄질 것이고, 그 다음에는 만들어진 곡을 부르고 연주해 녹음하는 과정이 이어질 것이다. 이 것이 과연 끝일까? 대중이 바로 녹음을 마친 단계의 곡을 들을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기회가 닿아 이를 듣게 된다면 입에서 절로 한숨 섞인 탄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헐……”. 아마도 목소리와 연주가 저마다 따로 놀며 귓가를 어지럽히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이 모든 혼란을 정리해주는 구세주는 따로 있다. 바로 사운드 엔지니어이다.
사운드 엔지니어의 역할은 조향사와 흡사하다. 조향사는 여러 가지 향료를 배합해 새로운 향을 만들거나 향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향료 간 비율이나 궁합이 맞지 않으면 향기는 악취로 돌변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사운드 엔지니어는 여러 소리의 조화를 이뤄내 가장 듣기 좋은 조합을 찾아내는 존재이다.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의 대표곡 ‘I’m Yours’의 사운드가 투박하거나 거칠었다면 과연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세계적인 사운드 엔지니어 토니 마세라티(Tony Maserati)가 없었다면 이 곡의 달콤한 사운드도 없었을 것이다. 사운드 엔지니어는 또 다른 뮤지션인 셈이다. 설명할 부분이 많다보니 사족이 길어졌다.
사운드 엔지니어들의 작업은 지금까지 대부분 개인적으로 이뤄져 왔다. 이들은 수도 많지 않은데다 도제식으로 기술을 전수하다보니 음악산업에서 가장 폐쇄적인 집단으로 꼽힌다. 음악이 단 한 명의 사운드 엔지니어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보니, 뮤지션의 의도와 다른 사운드로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만약 사운드 엔지니어도 작곡가들처럼 팀을 이뤄 곡을 작업한다면, 훨씬 완성도도 높고 효율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이 같은 의문을 가지고 뭉친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후암동의 한 고기집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팀 ‘팀 엔지니어스(Team N Genius)’의 멤버 국윤성, 김갑수, 김일호, 이건호, 이동희, 정택주(가나다 순)를 만나 소주를 나누며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계기로 ‘팀 엔지니어스’를 결성하게 됐나?
이동희 : 멤버들 모두 어릴 때부터 친분을 맺어온 선후배 관계이다. 작업을 하다보면 종종 막히는 일이 생기는데, 이 업계는 노하우를 공유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세계이다. 멤버들은 서로 그런 일이 생기면 노하우를 공유해 온 편한 사이였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다보니, 협력해 작업하는 일이 홀로 작업하는 일보다 질적으로나 속도 면에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근 들어 작곡가들도 팀으로 움직이며 좋은 결과물을 내는 모습에도 자극을 받았다. ‘팀 엔지니어스’라는 이름으로 멤버들이 뭉친 이유이다.
대중에게 사운드 엔지니어는 생소한 존재이다.
이건호 : 영화와 비교하면 촬영감독과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이동희 : 편곡자도 생소한 존재였는데, MBC ‘일밤-나는 가수다’를 통해 대중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려지지 않았나. 그런데 사운드 엔지니어는 편곡자보다도 노출이 더 되지 않으니 대중이 존재를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웃음)
과거 CD와 테이프가 팔리던 시대에는 앨범 재킷을 살펴보면 엔지니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음원 시대인 요즘에는 엔지니어의 이름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과거와 비교해 현재 엔지니어들의 위상은 어떤 편인가?
김일호 : 과거에는 확실하게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인정받는 부분들이 있었다. 음악을 대중에게 내놓지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지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니까. 그러나 요즘에는 스튜디오에만 있던 값비싼 장비들을 모두 집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홈레코딩 시대이다. 녹음실이 없으면 안 되는 시절과 비교해 역할이 줄어든 부분이 분명하게 있다. 그러나 음악을 오래 하다보면 뮤지션 스스로 깨닫게 된다. 좋은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엔지니어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동희 : 홈레코딩의 대중화로 사운드 엔지니어들의 위치가 불안정해 진 것도 사실이다. 녹음실이 몰락하니 자연스럽게 도제식으로 기술을 키워왔던 엔지니어들도 터전을 잃고 있다. 그러나 얕은 지식으로 손쉽게 녹음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저급한 사운드를 담은 음악들이 폭증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건호 : 우리가 팀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장점은 커버할 수 있는 장르의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각자 잘 다루는 음악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음악을 맡아도 팀 내부에서 작업이 가능하고 속도도 빠르다. 멤버들 모두 자신의 역량에 대한 자부심과 동시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함께 기술을 공유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팀 엔지니어스’는 그런 새로운 사운드 엔지니어의 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택주 : 팀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게 됐다는 점이다. 원래 엔지니어들은 작업의 특성상 외골수들이 많다.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멤버들이 함께 활동하며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은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다.
국윤성 : 나머지 멤버들이 대부분 선배들이다보니 어느 정도까지 나를 내려놓아야 하는가 고민이 많았다. 나 역시 고집을 가지고 있고, 그동안 해 온 방식이 있으니 말이다. 나를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가 많았는데, 이는 내게 정말 많은 가르침을 줬다.
‘팀 엔지니어스’의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이건호 : 한 멤버가 의뢰 받은 음악의 작업 전부를 맡는 방법, 의뢰 받은 음악을 각자 작업해 뮤지션에게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받아 선택을 받는 방법, 2~3명의 멤버가 의뢰 받은 음악을 같이 작업 하는 방법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세 가지 방법 외에도 작업 방식은 다양하다. 이 같은 결과물을 멤버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공유한다. 곡을 만든 뮤지션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그만큼 리스크도 최소화 된다. 멤버들이 한 음악을 다각도로 재해석하고 되고 여러 색깔로 표현할 수 있으니, 뮤지션 입장에선 자신의 의도와 가장 가까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고 또 자신의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
멤버들이 함께 한 대표적인 작업물들을 소개해 달라.
이동희 : 아무래도 ‘임재범 30주년 기념 앨범’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임재범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대단한 경력을 쌓은 뮤지션 아닌가? 그런 뮤지션과의 작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만약에 나 혼자 그 앨범의 작업을 맡았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멤버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작업을 맡을 수 있었다. 내가 안 되는 부분을 다른 멤버가 충분히 커버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택주 : 나 말고도 멤버가 다섯 명이가 더 있다는 사실은 큰 힘이 된다. 예를 들어 뮤지컬 OST의 경우 정해진 시간 동안 한 번에 스무 곡 이상 작업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혼자서는 어렵지 않겠나? 우리는 그 어떤 작업도 빠른 시간에 좋은 결과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멤버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든든하다.
연주자들은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를 통해 자신의 연주에 대한 저작인접권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사운드 엔지니어들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동희 :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는 음악인, 음반산업자, 프로듀서, 엔지니어 등 등으로 이뤄진 전미국레코드예술과학아카데미(NARAS) 회원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선 시상식 등 음악과 관련된 주요행사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들이 배제돼 있다. 외부에 보이지는 않아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사운드 엔지니어를 조명하는 시상식이 생겼으면 좋겠다. 또한 한국대중음악상 등 기존의 음악 시상식들이 사운드 엔지니어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운드 엔지니어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조언이 있는가?
이건호 : 한 때 전국의 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엔지니어를 양성하기 위한 음향제작과가 우후죽순 개설된 일이 있지만, 현재 사그라진 상황이다. 사운드 엔지니어는 얻는 대가와 비교해 힘든 업종이다보니 지망생도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없으면 음악도 없다는 점에서 대단히 보람 있는 일이다. ‘팀 엔지니어스’는 이런 지망생들에게 버팀목이 돼 주고 싶다. 우리가 팀을 결성한 이유 중 하나는 후배 양성이기 때문이다.
이동희 : 사운드 엔지니어를 하기 위해선 먼저 음악을 좋아해야 한다. ‘팀 엔지니어스’ 멤버들 모두 음악에 미친 사람들이다.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사운드 엔지니어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장당하건대 사운드 엔지니어는 음악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다. 그러나 대충해선 결코 살아남기 힘든 직업이기도 하다. 사운드 엔지니어를 꿈꾸는 이들을 얼마든지 환영한다. ‘팀 엔지니어스’는 그들에게 좋은 선배로서 모범을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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