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63. 나팔꽃으로 알았던 그 꽃, 알고 보니 ‘메꽃’이었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7. 28.

진달래와 철쭉, 매화와 벚꽃, 엉겅퀴와 지칭개 등 서로 닮아서 사람들이 혼동하는 꽃들이 꽤 있다.

나팔꽃과 메꽃도 이런 관계에 속하는 꽃인데, 메꽃의 존재감은 없어도 너무 없는 편이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메꽃을 메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일이 없다.

요즘에는 길에서 나팔꽃보다도 흔히 보이는데 존재감이 참 안습한 꽃이다.

이 소박한 꽃을 조명해보고 싶었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7월 29일자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기자가 매년 여름 지인들과 함께 길을 걷다보면 겪는 재미있는 상황 하나가 있습니다. 지인들은 기자에게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을 자주 묻는데, 몇몇 지인들은 자신 있게 특정한 꽃을 가리키며 이름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 이름이 맞는 경우도 많지만, 유독 이 여름 꽃의 이름만큼은 제대로 아는 이들이 드물더군요. 기자가 이 꽃의 본명을 이야기해주면 모두들 깜짝 놀라 되묻곤 합니다. “이 꽃이 나팔꽃이 아니라고?”. 이번 주에는 메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구례5일장에서 촬영한 메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메꽃은 메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입니다. 메꽃은 매년 6~8월이면 연분홍색 꽃을 피우는데, 전국의 강변 산책로나 길가의 화단에서 흔하게 볼 수 있죠. 나팔꽃과 메꽃은 꽃잎의 색을 제외하면 똑같은 꽃이라고 착각하기 쉬울 정도로 서로 많이 닮았습니다. 나팔꽃 또한 메꽃과에 속하는 식물이니, 서로 닮은 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나팔꽃과 빼닮았는데 연분홍색인 꽃을 보셨다면, 여러분은 메꽃과 만나신 겁니다. 서로 닮아 많은 이들이 혼동하는 진달래와 철쭉의 관계와 묘하게 닮지 않았나요?

그러나 둘의 차이는 서로 다른 이름만큼이나 많습니다. 여러해살이풀인 메꽃과는 달리 나팔꽃은 한해살이풀입니다. 나팔꽃의 원산지는 인도에서 히말라야에 이르는 지역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을 원산으로 하는 메꽃과 다르죠. 나팔꽃은 푸른 자주색, 붉은 자주색, 흰색, 붉은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을 피우지만, 메꽃의 색은 연분홍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나팔꽃은 아침에 피는 반면, 메꽃은 한낮에 피어나죠. 나팔꽃의 잎은 둥근 심장모양이지만, 메꽃의 잎은 나팔꽃보다 폭이 좁고 깁니다. 종자로 번식하는 나팔꽃과는 달리, 메꽃은 땅속줄기로 번식을 합니다. 이렇게 비교해 보니 서로 정말 많이 다르죠?


대전 대덕구 송촌동 정수사업소에서 촬영한 나팔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나팔꽃과 달리 메꽃은 그 이름의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습니다. 사실 메꽃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간단합니다. 메꽃의 ‘메’는 뿌리줄기를 의미하는 말이거든요. 식물의 뿌리줄기들이 대개 그러하듯, 메꽃의 뿌리줄기 또한 풍부한 전분을 함유하고 있어 과거에 구황식물로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주로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이른 봄에 메꽃의 뿌리를 캐 밥을 지을 때 쪄서 먹거나 구워서 먹었다더군요. 기자가 국어사전을 뒤져보니 ‘메’는 ‘먹이’의 옛말이란 뜻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마음이 조금 아려오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여름에 피는 꽃들은 뜨거운 햇살에 지지 않으려는 듯 강렬한 느낌을 주는 꽃들이 많습니다. 나팔꽃도 그런 여름 꽃들 중 하나이지요. 하지만 메꽃의 인상은 나팔꽃과는 달리 수수한 편입니다. 꽃말조차도 ‘수줍음’이죠. 모두가 존재감을 과시할 때 외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소박함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올해 여름에도 자신의 이름 두글자를 제대로 불러주길 바라는 메꽃이 길 위에서 수줍게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