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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65. ‘무궁화’는 대한민국 공식 국화가 아니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8. 18.

8월은 무궁화가 가장 활발하게 개화하는 때인데, 요즘에는 길에서 무궁화를 보기가 쉽지 않다.

길에서 보기도 쉽지 않고, 벚나무나 이팝나무 보다도 가로수로 인기가 없는데 무궁화를 국화라고 부르니 민망한 일이다.

더욱 문제인 부분은 무궁화가 대한민국의 '공식' 국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법에 의해 보호되는 태극기와는 달리 무궁화를 국화로서 대우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관습일 뿐이다.

나는 무궁화를 국화로 부르는 것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다. 국화라면 우리나라 원산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무궁화를 국화로 부르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강한 만큼, 그에 합당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8월 19일자 헤럴드경제 26면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애국가’의 후렴구입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국화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무궁화를 대한민국의 국화라고 규정한 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무궁화는 아욱과의 낙엽관목으로, 원산지는 인도와 중국 서남부 지역입니다. 무궁화는 이른 새벽에 피어나 저녁에 홀연히 꽃송이를 떨어뜨리는데, 이 같은 사태가 여름과 가을에 걸쳐 무려 100여 일 동안 계속됩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에서 촬영한 무궁화.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무궁화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어서 ‘근(槿)’, ‘목근(木槿)’, ‘목근화(木槿花)’, ‘훈화초(薰華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다함이 없는 꽃’이라는 의미를 가진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은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쓰이고 있습니다. 무궁화의 생태를 감안하면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역시 무궁화가 아닌가 합니다.

무궁화는 비록 한반도를 원산으로 하진 않지만, 예부터 이 땅에서 유독 많이 피어났던 꽃인가 봅니다. 신라 효공왕 때인 897년, 최치원은 당(唐)에 보내는 국서에 신라를 ‘근화향(槿花鄕)’, 즉 ‘무궁화의 나라’라고 칭했습니다. 조선 초 강희안(1417~1464)이 쓴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은 “단군이 나라를 열 때 무궁화가 나왔기 때문에 중국이 우리나라를 ‘근역(槿域, 무궁화의 나라)’이라고 일컫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무궁화와 우리나라의 인연이 보통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저 흔한 꽃이었던 무궁화가 국화라는 상징성을 얻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구한말의 독립운동가 남궁억(1863~1939) 선생은 1893년 민족운동의 상징으로 삼고자 무궁화를 국화로 정하고 무궁화 보급운동을 벌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896년 독립문 정초식(定礎式) 당시 배재학당 학생들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후렴구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조선사람 조선으로 길이 보존하세”라는 가사를 붙여 부른 뒤 애국가의 가사에도 이 후렴구가 반영, 무궁화는 광복 후 자연스럽게 국화로 정착됐습니다. 따라서 무궁화의 지위는 관습상으로 인정되는 국화라고 정의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에서 촬영한 무궁화.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8월에는 무궁화의 개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국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주변에서 무궁화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2015년 말 기준 전국의 가로수 총 678만본 중 무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5.2%(35만6000본)에 불과합니다. 16ㆍ18ㆍ19대 국회에서 무궁화를 국화로 관리하자는 법률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무관심 속에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무궁화를 국화로 여긴다면, 조금 더 무궁화에 관심을 가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