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67. ‘벌개미취’가 눈에 띄는 곳은 가을이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9. 1.

아직 본격적인 가을은 아니지만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을 먼저 소개하고 싶었다. 

이미 우리 주변 곳곳에 피어나기 시작한 꽃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흔하게 보이는 꽃인데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 안타까웠다. 

'들국화'라는 이름으로 퉁치기에 가을은 매우 다채롭다.


이 기사는 헤럴드경제 9월 2일자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지난 며칠간은 느닷없이 가을이었습니다.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며 호들갑을 떨던 뉴스들이 무색할 정도로 선선한 날이 계속 이어져 상쾌하면서도 당황스럽더군요. 피부로 가을이 느껴지니 눈으로도 가을을 느끼고 싶어 기자는 지난 주말에 집밖으로 나섰습니다. 가을은 먼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가까운 화단에서 연보랏빛 꽃을 피운 벌개미취가 눈에 띄었거든요. 들꽃은 언제나 계절을 앞섭니다.

벌개미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원산지는 우리나라입니다. 벌개미취는 국화과 식물 중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편입니다. 여름이 가을의 문지방을 넘을 무렵, 길을 걷다가 국화와 비슷한 연보랏빛 꽃을 보신 일이 있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벌개미취와 마주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전 대덕구 비래동의 한 골목에서 촬영한 벌개미취.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우리나라를 원산지로 하는 식물들은 대개 귀화식물과의 경쟁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편입니다. 조직 생활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일은 쉽지 않죠. 귀화식물은 귀화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자신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증명한 셈입니다. 특히 가을은 온갖 국화과 식물들이 경쟁하듯 꽃을 피우는 계절이죠. 벌개미취는 조용하지만 치열한 식물들의 무한경쟁을 뚫고 가을이면 전국 지천에 꽃을 피우는 강인한 식물입니다. 

벌개미취의 생명력은 다른 식물들이 감히 뿌리를 내리려고 시도하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벌개미취의 튼튼한 뿌리는 토양을 강하게 움켜쥡니다. 따라서 벌개미취를 경사지에 심으면 토사 유출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죠. 이 때문에 벌개미취는 우리나라를 원산지로 하는 식물 중에선 드물게 조경에 활발히 쓰이는 편입니다. 가을에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비탈면에서 벌개미취 군락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이죠. 

벌개미취에겐 자신과 꼭 닮은 친척인 쑥부쟁이가 있습니다. 벌개미취와 쑥부쟁이는 같은 국화과 식물인데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소에서 꽃을 피워 구별이 쉽지 않죠. 게다가 벌개미취의 또 다른 이름이 고려쑥부쟁이여서, 둘을 쑥부쟁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둘을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잎을 살펴보는 겁니다. 벌개미취의 잎은 가장자리에 밋밋하고 작은 톱니를 가지고 있는데, 쑥부쟁이 잎의 톱니 모양은 크고 뚜렷합니다. 간단하죠?


서울 청계천에서 촬영한 벌개미취.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개미취의 꽃말은 ‘너를 잊지 않으리’입니다. 벌개미취가 본명보다 다른 국화과 식물들과 더불어 ‘들국화’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음을 상기하면 꽤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꽃말입니다. 매년 이맘때에 계속 만나게 될 인연이라면, ‘들국화’ 같은 두루뭉술한 이름보다 본명으로 벌개미취를 기억하는 것이 조금 더 가을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자는 믿습니다. ‘들국화’라는 이름으로 묶어두기에 가을은 매우 다채로우니 말입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