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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75. ‘만수국’ 앞에서 기대하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1. 24.

소설이 지나니 날씨가 정말 겨울이 됐다.

세상 모든 게 움츠리는 계절이지만, 그 계절의 초입에도 꿋꿋이 화단에서 버티다가 시드는 꽃이 있다.

메리골드 혹은 만숙국으로 불리는 꽃인데, 매우 흔하게 보이는 꽃이지만 그 이름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당분간 계절에 어울리는 식물을 '식물왕'으로 다루긴 어려울 것 같다.

그동안 해당 계절에 못 다룬 식물들을 다뤄봐야 겠다.






[HOOC=정진영 기자] 며칠 전, 첫눈이 내리고 본격적으로 추워진다는 절기인 소설(小雪)이었습니다. 이 날 첫눈 소식을 알린 지역은 드물었지만, 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지며 소설의 이름값을 했죠. 산과 들에선 풀 마르는 냄새마저 잦아들며, 지상의 모든 것들이 숨을 죽이고 움츠리는 계절이 왔음을 조용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다시 겨울입니다.

소설 무렵, 도시의 화단은 황량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꿋꿋하게 버티다가 눈을 맞고 겨울의 문턱을 넘긴 후에야 겨우 시드는 꽃도 있습니다. 이맘 때 도심에서 길을 걷다가 꽃을 마주치셨다면, 아마도 만수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촬영한 만수국.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만수국은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초여름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갈색 또는 적갈색 꽃을 피웁니다. 만수국의 원산지는 멕시코이지만, 강한 내한성과 생명력 때문에 산간지역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편입니다. 도심의 화단에서 만수국을 흔히 볼 수 있는 이유이죠. 매우 오래 산다는 의미를 가진 ‘만수(萬壽)’라는 단어를 이름으로 가지게 된 이유를 이해할만 합니다.

하지만 만수국이란 이름을 낯설게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만수국은 메리골드, 불란서금잔화, 홍황초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리는데다 천수국이나 금잔화와도 자주 혼동되곤 합니다. 이 같은 혼동은 국내에서 이들에 대한 유통명, 민간사용 용어가 아직 정확하게 정리돼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천수국은 만수국과 가까운 종이고, 금잔화는 천수국과 같은 국화과 식물이지만 다른 종입니다. 

천수국은 멕시코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해 자리잡은 꽃으로 ‘아프리칸 메리골드’로 불리고, 만수국은 멕시코에서 유럽(프랑스)으로 이동해 자리잡아 ‘프렌치 메리골드’로 불립니다. 천수국은 노란색ㆍ적황색ㆍ담황색 꽃을 피우는데, 만수국과는 달리 꽃의 모양이 구형에 가깝고, 꽃의 크기도 만수국보다 크죠. 반면 금잔화는 남유럽 원산으로, 꽃의 모양이 만수국과 비교해 확연히 다르고 개화기도 봄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마주치게 될 꽃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교통정리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메리골드’라는 외래어보다는 만수국이란 이름이 꽃의 생태와 특징을 더욱 잘 설명해주는 이름이란 게 기자의 소견입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촬영한 만수국.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만수국의 꽃말은 ‘이별의 슬픔’, ‘가련한 사랑’,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등 제대로 통일되지 않은 이름만큼이나 다양합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만수국의 생태를 감안하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란 꽃말이 만수국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꽃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시국 속에서 맞는 겨울입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만수국 앞에서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을 기대해 봅니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