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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식물왕 정진영> 77. 아낌없이 주는 ‘부추’의 숨겨진 아름다움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6. 12. 8.

더 이상 꽃이 피지 않는 겨울에는 '식물왕'으로 다룰 식물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이왕이면 겨울에 의미가 있는 식물을 다루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얼마 전 추운 날씨에 버스를 기다리다가 정류장 근처 편의점에서 호빵기계를 봤다.

호빵기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부추를 떠올렸다.

야채호빵에 부추가 들어가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나.

그리고 부추는 매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이를 아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

이번 주 '식물왕'은 부추로 낙찰.


이 기사는 12월 9일자 헤럴드경제 26면 사이드에도 실린다.





[HOOC=정진영 기자] 겨울의 이른 아침 출근길에 시린 손을 비비며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가끔씩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버스정류장 근처에선 편의점이 하나 쯤 보이기 마련인데, 이맘 때 편의점 안에선 십중팔구 호빵 기계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유혹이죠.

여러분은 단팥호빵과 야채호빵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시나요? 기자는 후자를 더 선호합니다. 기자는 만두를 무척 좋아하는데, 야채호빵은 마치 커다란 만두를 먹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런데 여러분은 야채호빵 속에 들어가는 당근, 양파, 부추 등 속재료들이 모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란 사실을 아시나요? 그중에서도 부추는 매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식물입니다.


대구 강정고령보 부근 텃밭에서 촬영한 부추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부추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동아시아 지역이 원산지입니다. 부추는 한 번 심으면 봄부터 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는데, 특히 봄을 제철로 치죠. 부추는 늦여름부터 꽃을 피우는 데, 꽃대가 올라오면 잎이 억세지고 맛도 떨어집니다. 꽃이 핀 부추는 농부의 입장에선 베어내야 할 골칫거리인 셈이죠. 우리가 부추꽃을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추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잎채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례로 상추는 게으른 농부들에게만 꽃을 보여준다고 하죠.

부추꽃이 농부들에겐 밉상일지도 모르지만, 농부가 아닌 기자의 눈에는 참 아름다운 꽃입니다. 길게 솟아오른 꽃대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 그 끝에서 별 모양의 흰 꽃이 피어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작은 꽃다발을 닮았습니다. 이따금씩 시골이나 교외의 텃밭에서 주인의 손을 타지 않은 부추들이 한꺼번에 꽃을 피워 장관을 연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흰 꽃과 초록색 잎의 대비가 잘 어울려 텃밭이란 사실을 잊게 만들죠.

꽃의 아름다움 이상으로 부추의 놀라운 점은 생명력입니다. 부추는 한 번 심으면 크게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서 몇 년 동안 잘라 먹을 수 있습니다. 수없이 밑동을 잘리고도 새잎을 내는 기세가 줄어들지 않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한 부추는 추운 겨울에도 쉽게 얼어 죽지 않아 이듬해 봄이 오면 어김 없이 새싹을 틔웁니다. 부추는 그 생명력만큼이나 풍부한 영양성분을 가지고 있어 건강식품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부추는 비타민, 칼륨, 철분, 섬유소 등을 풍부하게 함유해 건강식과 다이어트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죠. 부추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주는 기특한 식물입니다.


대구 강정고령보 부근 텃밭에서 촬영한 부추꽃.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부추꽃의 꽃말은 ‘무한한 슬픔’입니다. 다소 의외인 꽃말이지만, 온몸을 내주고도 아름다운 꽃을 보여줄 일이 드문 부추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꽃말이 아닌가요? 그저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저 흔하디흔한 부추도 실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