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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평범한 언어로 아픈 현실을 절절하게 토로하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5. 2.

노시인이 펼쳐내는 시어가 평범한 듯하면서도 깊었다.

시집을 즐기지 않지만 좋은 시집이었다.







정희성 시집 ‘흰 밤에 꿈꾸다’

“무엇에 혈안이 되어 살아왔던가/ 충혈이 심해 안과에 가니/ 의사가 일회용 눈물을 처방한다/ 살아오는 동안 눈물이 바닥나버렸다/ 슬프다 슬픈 일을 당하고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게 되었으니”(마른 눈물)

절절한 단어 하나 없이 절절하다. 노시인은 시집을 묶으며 “나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미안하다. 그동안 내가 부려먹은 언어에게도”라는 말을 남겼다. 정희성(74·사진) 시인의 말은 일상에 발을 디딘 평범한 언어로도 감정의 진폭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지만, 그런 언어를 다루는 일이야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토로처럼 들린다.

시인의 신작 ‘흰 밤에 꿈꾸다’(창비)는 시인이 ‘그리운 나무’(창비) 이후 6년 만에 펴낸 시집이자 일곱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지난 1970년 등단 이후 반세기 동안 대표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이래 늘 그래 왔듯이 아픈 사회 현실과 모순에 주목해 왔다. 시인은 신작에서도 그런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도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특히 시간의 흐름 속에 섬세하게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은 시어를 통해 시인의 더욱 깊어진 시선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별일 없었냐고 물었더니/ 나는 문제 없어/ 나라가 걱정이지”(광장에서)

“봄도 봄이지만/ 영산홍은 말고/ 진달래 꽃빛까지만/ 진달래꽃 진자리/ 어린잎 돋듯/ 거기까지만/ 아쉽기는 해도/ 더 짙어지기 전에/ 사랑도/ 거기까지만/ 섭섭기는 해도 나의 봄은/ 거기까지만”(연두) 

현실에서 자연으로 눈을 돌렸던 시인의 언어는 문득 동심으로 향하다가 마침내 아이들의 언어처럼 짧고 명료해진다. 시집 속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이 그곳에 담겨 있다.

“세상에!/ 등에 업힌 저 개구리들 좀 봐/ 겨우내 얼마나 힘들었을꼬”(경칩) 

“그대 떠나도/ 거기 있을 거야 나는/ 산이니까”(이별 1)

“유리창에 붙어 서서/ 마당을 내다보던 아이가/ “엄마 누가 오셨어요?”/ 올 사람 없는데 누구일까/ 엄마가 가보니/ 여치 한 마리”(받아쓰기 2)

시인은 “어려운 시절을 통과해 오는 동안 ‘미움의 언어’에 길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고, 그것이 세상을 각성시키기는커녕 자신마저 황폐하게 하는 것을 깨달았다”며 “잘될지 모르겠지만 어린 손녀가 읽을 수 있는 시를 한 권쯤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