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나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흔한 소재와 이야기를 이렇게 흔하지 않게 들려주는 작가를 오랜만에 본다.
조만간 일을 내지 않을까 싶다.
문화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라 더 반가웠다.
첫 소설집 ‘말 좀 끊지 말아줄래?’를 출간한 최정나 작가. 문학동네 제공
- 최정나 작가 첫 소설집 ‘말 좀 끊지 말아줄래?’
시아버지 생일에 불편한 대화
희소병 친구 위로하려다 질투
염치 없고 무례한 세상이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모습들
“소통강조 강박증에 걸린 세상
오히려 소통은 껍데기만 남아”
“세상에 없는 낯선 이야기보다
일상을 비겁하지 않게 쓰고파”
술집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직장인들의 회사 이야기, 찜질방에서 들려오는 할머니들의 며느리 뒷담화,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시시콜콜한 통화소리…. 우리가 일상에서 우연히 듣는 이야기는 특별한 내용도 아닌데 귀를 세우게 한다. 최정나 작가가 첫 소설집 ‘말 좀 끊지 말아줄래?’(문학동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런 이야기를 닮았다. 최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외면해 온 진실을 끄집어내 흔한 이야기를 흔치 않게 들려주는 데 탁월하다. 그 이야기에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소설을 읽으면 최 작가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작가는 “이번 소설들은 일상에서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궁금해서 쓴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자기 말을 하느라 바쁘다. 표제작 ‘말 좀 끊지 말아줄래?’에 등장하는 장례식장 풍경은 그야말로 ‘아사리판’이다. 상대가 고인과 어떤 사이인지도 모른 채 위로를 건네는 건 예사다.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떠들다가 냉장고에 보관된 술을 빼돌려 사업을 벌이겠다고 진지하게 의논하는 인물들의 모습에 실소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말들이 어느 순간 묘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동시에 불편한 감정의 근원이 드러난다. 싫어도 아닌 척, 몰라도 아는 척….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다.
최 작가는 수많은 말을 통해 우리가 가장 친밀하다고 여기는 가족, 친구의 관계가 실은 허상이 아닌가 묻는다. ‘전에도 봐놓고 그래’에선 시아버지 생일에 모인 가족들이 섞이지 않는 불편한 대화를 이어가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사적 하루’ 속 인물은 희소병에 걸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온천을 찾지만, 친구의 행복한 모습을 질투한다. ‘한밤의 손님들’의 주인공은 ‘엄마는 늘 꽥꽥대고, 동생은 늘 꿀꿀댄다’며 둘을 ‘오리’와 ‘돼지’라고 부른다. 소설 속엔 온통 염치없고 무례한 사람들뿐이라 불편한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최 작가는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소통을 강조하는 세상이지만 오히려 소통의 강박 때문에 소통이란 행위의 껍데기만 남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 작가의 중요한 일상 중 하나는 집 근처 골목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최 작가는 앞으로도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생각이란다. “세상에 없는 낯선 이야기를 쓰겠다는 욕심보다 일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을 비겁하지 않게 쓰는 것.” 그것이 최 작가의 목표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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